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산업 중심서 생태 중심 전환 요구돼
정부·기업 지구적 관점서 접근해야
총선이 끝났다. 승자와 패자의 기쁨과 회한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다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언론을 시끄럽게 장식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활동에 기대를 거는 국민은 많지 않다. 늘 ‘정치만 잘하면 되는데…’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정책선거 문화 확산을 위한 언론기사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2023년에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각 지역의 이슈를 정리해 놓았는데 이 자료를 분석해 보면 교통·인프라 개선, 사건·사고 대응, 지역 경제 활성화, 환경 및 생태 보호 등으로 이슈가 집약된다.
아마도 후보자들은 대략 이런 이슈를 기반으로 선거에 임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슈들에 대해 ‘초객체(Hyperobject)’를 이해하는 가운데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초객체란, 철학자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전통적인 개념이나 경계를 넘어서는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지칭한다. 초객체는 그 규모가 방대하고, 시간적·공간적으로 분산되어 있어 일상적인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지만 그 영향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전체적인 문제의 규모를 한눈에 파악하기도 어렵다. 인공지능 또한 마찬가지로, 그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전 세계에 걸쳐 분산되어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이런 초객체는 기술, 환경, 사회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복잡한 개념이며, 이는 각각의 요소가 상호 작용하며 발전한다고 보기 때문에 단일 요소나 영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출산장려금 지급이나 보육 지원 등에 지난 15년간 약 380조 원을 사용했지만 2023년에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초객체 상황을 이해한다면 당장에 출산율을 높이겠다고 장려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거시적 차원에서 면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출산 후 아이들이 평생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다. 과연 기후 위기로 그들에게 안전한 생태계가 보장될 것인지, 일터와 행복은 담보될 수 있을 지 등에 관한 분석과 전망이 필요하다. 만약 초객체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봤다면 이런 예산을 모두 모아 지속가능한 사회시스템이나 교육 등 인프라 투자에 사용했을 것이다.
초객제의 대표적인 사례는 기후위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산업 중심의 경제 모델에서 벗어나, 생태 중심의 경제 모델로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의 개념을 뛰어넘는 글로벌 협력 거버넌스가 하루 빨리 구축되어야 한다. 이렇게 지속가능한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든다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높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초객체적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의 광범위한 영향력이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구 증가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단기적 관점을 지양하고 초객체적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정부조직이나 예산 집행 등에 있어 이러한 대책은 찾기가 어렵다. 무의미하게 예산만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초객체는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전환 없이는 결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초객체를 이해하기 위한 대규모 교육이 실시되어야 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 당장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기업들도 초객체를 이해하지 못한 사업계획은 언제 어디서 어떤 위협이 닥칠지 대비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나 기업도 이런 거대한 초객체를 이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초객체를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 우리의 인식을 전환하고 지구적 선(Global Good)을 추구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하는 가운데 문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현재의 난제를 푸는 묘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