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지난해 이어 또 인하 어려워”
조선업계 “원가 하락 제품가에 반영해야”
국내 조선사와 철강사 간 후판 가격 협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조선사 측은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후판가 인하를, 철강사 측은 지난해 하반기 협상에서 가격을 인하한 만큼 추가 인하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3사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사들은 올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후판가 협상은 매년 상반기·하반기 두 차례 진행된다.
철강사 측에선 지난해 하반기 후판가 협상을 가격 인하로 마무리한 점, 철강 시황이 지속 부진한 점을 들어 추가적인 가격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철강 시장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조선 호황으로 그나마 수요가 늘 것으로 보이는 후판 가격을 추가로 인하하면 수익성 악화가 심화한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미 국내 조선업이 불황이던 시절 조선사들의 위기 극복을 위해 후판 가격을 인하했던 전례가 있다”면서 “조선사 측에서 고통 분담을 해주길 기대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사 측에선 중국산 등 수입 철강재가 톤당 80만 원대에 가격이 형성된 점, 최근 철광석의 톤당 시세가 약 106달러로 지난해 12월 대비 약 25% 하락한 점을 들어 후판가를 인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광석 시세는 중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며 철강 재고가 10년 내 최고 수준에 달하는 등 수요 급감의 영향으로 하락세에 있다.
지난해 하반기 협상은 조선사 측의 주장이 반영돼 지난해 하반기 대비 약 5% 가격이 인하된 톤당 90만 원 중반대로 마무리됐다. 후판은 선박 건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30%에 달하는 만큼, 후판가 협상 결과에 따라 조선사들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선사 관계자는 “후판가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지표는 결국 원자재 가격인데, 올해 초 톤당 140달러를 돌파했던 철광석 시세가 이달 초엔 100달러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면서 “원자재 가격이 내려간 만큼 후판가에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조선사 측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산·일본산 등 수입 후판 비중을 지속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중국산 후판 수입은 약 130만 톤으로 전년 대비 16% 넘게 늘었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호주가 중국산 철강 제품에 부여한 60%의 관세가 부당하다고 판결하며 중국 철강업체들의 수출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도 조선사들의 수입 후판 비중 증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철강협회 관계자는 “2024년에도 중국의 철강 순수출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돼 국내에도 중국산 수입이 지속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을 토대로 조선사들은 이번 협상에서 최대 톤당 80만 원대까지 후판가를 내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업계 관계자는 “양 업계의 입장차이로 인해 올 상반기 협상도 지난해 하반기 협상처럼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결국 핵심 지표인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인 만큼 조선사 측의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