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장발장은행장 (뉴시스)
홍세화는 이날 정오께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입원 중 숨을 거뒀다. 고인은 지난해 2월 전립선암 4기 판정을 받고 최근까지 투병생활을 해오다 이날 생을 마감했다.
1947년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난 홍세화는 196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자퇴하고, 1929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학시절인 1972년에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됐다가, 복학해 8년만인 1977년에 졸업했다.
이후 무역회사에 입사해 1979년 해외 지사 근무 도중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당시 경험을 풀어낸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1995년 출간되면서 고인은 한국에 ‘톨레랑스’(관용)를 퍼뜨린 지식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홍세화는 1999년 귀국한 뒤 2001년 2월부터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기획위원과 편집위원,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2015년에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벌금을 낼 여력이 없어 노역할 위기에 놓인 이들에게 최고 300만 원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을 설립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만선 씨와 자녀 수현·용빈 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