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계가 해외 수주에 목을 매달고 있지만, 수주 전망은 안갯속이다. 국내 주택경기 악화로 대형사는 물론 중견사도 수익 창출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지만, 수주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만 떼놓고 보면 해외 수주액은 5년 내 최저 수준의 수주액을 기록했다. 여기에 수주 텃밭인 중동에선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등 지정학적 위험도 커지고 있다.
21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해외건설 수주액은 55억2000만 달러 규모로 최근 4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6% 줄어든 수준이다. 최근 5년간 1분기 기준 수주액은 2020년 112억 달러, 2021년 80억 달러, 2022년 66억 달러, 2023년 61억 달러 등이다.
해외건설협회는 1분기 수주 동향과 관련해 “국제 경제 저성장과 불확실성에도 국제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우디와 카타르 산업 설비(18억 달러)와 미국 배터리 공장(13억 달러) 수주에 성공했지만, 1분기 수주를 기대한 사우디와 투르크메니스탄, 오만 등의 사업은 2분기로 이월돼 수주액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1분기 해외 수주 내용을 뜯어보면 질적 악화가 우려된다. 실제로 1분기 중동 지역 수주 쏠림 현상과 특정 기업의 수주 독식 현상이 확대됐다.
‘수주 상위 10대 기업’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는 현대엔지니어링이 약 29억2200만 달러로 전체 수주액의 절반이 넘는 52.7%를 차지했다. 이어서 HD현대중공업이 11억4700만 달러로 전체의 20.8%에 달했다. 상위 10개 기업의 비중은 총 46억2000만 달러로 총수주액의 83.7%로 나타났다.
반면, 지난해 1분기에는 1~10위 기업의 비중은 총 7.4%에 그쳤다. 해외수주액 통계 집계 이후 누적 기준으로도 상위 10개 기업의 수주액 비중은 35% 수준으로 나타났다. 누적 평균과 비교해도 올해 1분기는 소수 기업의 수주 싹쓸이 현상이 유독 심했다.
아울러 중동지역 수주 비중이 갈수록 확대해 지정학적 위험 역시 커졌다. 1분기 중동 수주액은 전체의 43.6%인 약 24억 달러로 지난해 1분기 20.4%(12억4400만 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파악됐다. 반면, 중남미(1.4%→2.4%)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선 수주 비중이 줄었다.
이달 초 삼성 E&A와 GS건설이 사우디에서 수주한 72억 달러 규모 ‘파딜리 가스 증설 프로그램’ 역시 대규모 수주라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모두 사우디 한 곳에서 이뤄진 수주라는 한계점이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18일(현지시각) 이란 군사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시행하면서 중동 내 전면전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자국 본토를 미사일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동 내 확전 분위기가 확산하면, 국내 기업의 수주도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실 국내 기업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직접 수주를 따내긴 어려운 상황으로 중동이나 아시아 쪽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중동은 최근 고유가 기조에 개발 계획이 쏟아지면서 중동 수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중동 내 무력 충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에 집중된 국내 기업의 해외 수주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대형사는 물론 중견사도 올해 해외 수주를 확대하려던 기존 사업 계획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김화랑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2일 관련 보고서에서 “올해 주요 중견 건설사는 국내 건설 경기침체로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등 안정적인 재원에 기반을 둔 관련 사업 참여를 통한 해외시장 진출을 추진할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다만, 중동 내 분쟁이 국지전으로 그친다면 국내 기업의 수주 전망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동 내 분쟁으로 이란이 중동 석유 수출길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거나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낮은 만큼 국내 기업의 수주가 막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