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 아니다

입력 2024-04-22 05:0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독재만 보고 건국·경제 발전은 외면
장단점 가린 공과 평가 너무나 인색
온당한 역사 해석이라 말할 수 있나
과거집착 털고 미래 보는 사회 돼야

20여 년 전 홍콩의 한 대학에서 몇 년 가르친 적이 있다. 당시는 중국에 반환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영국의 영향이 크게 느껴졌다. 가르치던 박사과정 제자 가운데에는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 적잖이 있었다. 어느 날 그들 가운데 한 학생이 휘파람으로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냐고 물었더니, 모 주석이 국민당에 쫓겨 장정을 가면서 지은 노래라고 한다. 그래서 문득 물었다. 모택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그의 대답은 공 6, 과 4란다. 큰 희생을 치른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과 같은 과가 작지 않지만 중국을 통일한 공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의 대답을 듣고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우리의 역사적인 인물, 예를 들어 전직 대통령에 관하여 우리의 대학원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유사한 답이 돌아올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마도 용서할 수 없는 독재자, 한국을 일으켜 세운 지도자, 용서할 수 없는 종북주의자, 민주화를 이룬 투사 등 한편으로 치우치기만 한 답이 돌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역사의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 적어도 균형 잡힌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들에게 있음을 보고 중국의 역사교육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 생을 살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과 행동을 한다. 그 가운데 모두가 잘못되었거나 반대로 모두 옳기만 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추앙하는 성인들에게도 보는 관점에 따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경우 누군가에게는 전적으로 옳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적으로 그르다. 인류 역사는 그런 절대적인 편향성 때문에 무수히 많은 갈등과 증오로 점철되어 왔으며 때로는 크디큰 희생을 치렀다.

과거의 인물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나름 장단점을 가려 공과를 평가하여 정리하는 훈련이 우리에게는 너무 부족하다. 특히 전직 대통령, 그 가운데에서도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극과 극이다. 많은 한국인에게 이승만은 독재자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만든 뿌리이다.

1948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국민의 80% 가까이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원했고 자본주의를 지지한 비율은 10% 조금 넘었다. 지금처럼 원칙 없는 여론조사로 국체를 정했다면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체제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국체를 바로 세운 것만으로도 그는 국부로 추앙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번영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박정희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느리긴 했을지 모르나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이루는 데에 그의 공이 크다는 것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나라의 지도자로서 그는 국가번영에 대한 신념과 의지 그리고 방향설정에 있어서 탁월하였다. 무엇보다 나라와 국민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서독 파견 광부와 간호사들 앞에서 흘린 눈물의 진정성은 결코 의심할 수 없다고 본다. 독재만을 보고 그가 빠르게 이룬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보지 못한다면 어찌 역사를 바로 해석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누가 되었든 극과 극이고 그 때문에 서로 적지 않은 갈등을 하고 있다. 심지어 사망한 전직 대통령의 유골을 매장하는 것까지 안 된다고 하는 지경이 되었다. 과거의 인물, 사건, 업적에 대한 평가는 공과를 가려 역사의 선반에 올려놓으면 된다고 본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때문에 현재의 선택이 그릇되고 미래가 흐려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 아니다.

어느덧 대한민국은 정리해야 할 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추구해야 할 새로운 것은 등한히 하는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부모세대보다 잘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집착의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과거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미래가 중심이 되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