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내기 사회복지사 시절에,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일했다. 당시 지적장애인 분들과 함께 지방으로 여행을 갔는데, OO씨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바보 같아 보여도 다 알아요.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순간 멍해진 나는 어떤 사회복지사가 돼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장애인이라고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는 지금도 고민한다. 어떤 사회복지사가 돼야 할지.”
역시,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는 무섭다. 어느 개인에게 이 꼬리표가 붙는 순간, 그를 둘러싼 거의 모든 비장애인은 그를 내려다 본다. 지능은 인간을 분류하는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는데도, 지능이 낮다고 하면 무시하고 낮춰 본다.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저 글을 쓴 사회복지사도 거주 시설에서 살아가는 지적장애인을 바라보며 다소 쉽게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장애인이 무조건 보살펴야 할 존재인 듯, 마치 아기 다루듯 대했으리라.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지능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지적장애인이라도 다 안다.
상담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보면, 다들 뭔가 대단한 언어적 테크닉을 배우고 싶어한다. 아마도 평범한 사람이 모르는 고급 기술을 배워야만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상담 전문가는 단순히 인간 심리에 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그 어떤 내담자를 대면한다고 해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수용하는 사람이다.
이런 지혜는 꼭 전문적 상담에만 해당되진 않는다. 상담도 대화를 구성하는 부분집합이니까. 누구를 만나든지 원활하게 대화하는 근본적 방법은 무엇일까? 상대방도 내가 아는 바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존중’이 대화를 성공으로 이끄는 열쇠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상대도 다 안다. 그대의 태도를.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