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지난 2월의 1차 가이드라인을 보완한 내용이다. 기업 자율에 방점을 찍되 쪼개기 상장 등 ‘터널링’(지배주주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시장에 설명하도록 했다. 기업들이 작성하는 핵심지표엔 주가순자산비율(PBR)·배당성향·배당수익률 등 재무적 사항뿐 아니라 비재무지표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안도 담도록 했다. 진일보한 셈이다.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후진적 관행은 국내 기업 상당수의 고질병이다. 대표적으로, 핵심 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개 신규 상장하면서 모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오너 일가가 소유한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그런 관행을 정조준했다. 방향 설정은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차가운 시장 반응이다. 수혜주로 꼽히는 금융주들은 어제 코스피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코스피지수도 전장보다 8.41포인트(0.31%) 내린 2683.65로 마감했다. 코스닥 또한 약보합세였다. 물론 시장 변수는 밸류업 대책만이 아니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등 외풍 영향도 컸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을 밀어주겠다는 가이드라인이 나온 날, 시장이 죽을 쑨 것은 의미가 명확하다. 시장 참여자들은 별 기대를 걸지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만 뜯어 봐도 쉽게 이해가 간다. 그 무엇보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이행하지 않아도 특별한 제재가 없다. 시장은 ‘자율’만 믿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기업과 투자자 양쪽 모두의 관심사인 인센티브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지난달 말 배당·자사주소각 등 주주환원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한 법인세 부담 완화, 배당 확대 기업 주주의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번에 보다 구체적인 실행안이 나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느 정도 미풍이라도 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흥행 실패를 자초한 것이나 진배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낳는 본질적 요소가 따로 있다는 점도 무감동·무반응의 보이지 않는 요인이다. 한국 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묘약으로 상속세 개편만 한 것이 따로 있겠나. 세계 최악의 상속세 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한 주식시장 활성화는 헛된 꿈에 불과하다. 정책 당국자들도, 시장 참여자들도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쏙 빼놓고 기업 가치를 논하고, 밸류업을 말한다. 매번 이런 식이니 백날 길을 찾아봐야 힘만 빠지는 것이다. 차포를 다 떼고 ‘자율’만 강조해서야 어느 세월에 밸류업이 되겠는지 성찰할 일이다.
국내 기업들이 세대 교체기를 맞고 있다. 상속세 리스크는 날로 커지게 마련이다. 지난해 4월과 6월 무더기 하한가 사태를 빚은 상장사 오너 대다수가 60~80대였다. 왜 그들이 타깃이 됐는지 숙고할 일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속히 머리를 맞대고 관련 세제를 합리적으로 손보지 않으면 ‘밸류업’ 간판을 단 배는 산으로 가고, 시장은 탐욕과 반칙과 흉계로 얼룩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