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임기가 불과 채 한 달이 남지 않은 21대 국회에서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치한다. 챙겨야 할 민생경제 법안은 외면한 채, 여야가 대치하면서 21대 국회 법안 성적표는 낙제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6일 기준 21대 국회 발의 법률안은 모두 2만5830건이다. 발의된 법률안 건수만 따지면 역대 국회에서 최고치다. 직전인 20대 국회 발의 법률안 건수(2만4141건)와 비교하면 1689건 늘어난 수치다.
문제는 발의한 법률안을 처리한 숫자다. 발의하더라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뿐이어서다. 6일 기준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원안가결·수정가결·대안반영·수정안 반영), 법률로 반영한 안건은 9063건(35.08%)이다. 법률로 반영되지 않은(부결·폐기·철회·반려·기타) 안건은 391건(1.51%)이었다.
20대 국회 법안 처리 비율(36.4%)과 비교하면, 21대는 비슷한 수준이다. 19대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한 비율은 41.7%였다. 18대 국회(44.4%)까지 거슬러가서 비교하면, 법안 처리 비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생산성이 줄어드는 셈이다.
국회 법안 처리 실적은 낮은 상황에서 여야 간 대치로 민생경제 위기 대응과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등에 필요한 각종 입법은 잠들어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을 2일 본회의에서 처리, 국민의힘은 '입법 폭주'라며 반발하며 5월 임시국회 의사일정 협조를 거부했다. 여야 협조 없이 본회의가 열리기 힘든 상황을 고려할 때, 사실상 국회 파업 상태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각종 민생경제 법안은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대표적인 게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기술유출 문제 대응),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고준위특별법) 등이다. AI 기본법(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과 연금개혁 문제도 21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법안으로 꼽힌다.
고준위특별법은 국내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고준위 폐기물) 중간 저장소와 영구 처분장을 만드는 게 핵심인 법안이다. 현재 각 원전에 마련된 임시 시설에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고 있으나, 2030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른다. 이에 여야가 특별법 제정에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쟁점 법안으로 인한 갈등에 국회 문턱은 넘지 못하고 있다.
연금개혁도 윤석열 정부 핵심 국정과제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막바지 합의안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연금특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8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영국·스웨덴·네덜란드 등 연금개혁에 성공한 나라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해외 출장 갈 예정이다. 해당 기간 밀도 있는 논의로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연금특위 측 설명이다.
한편 김진표 국회의장은 2일 본회의 당시 "무엇보다 연금개혁을 이뤄내야 하는 역사적 책임이 21대 국회에 있다. 만약 이번 임기 내 연금개혁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매 5년마다 재정 재계산을 통해 현행 연금제도 건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국회가 무려 17년간이나 미뤄오다 또다시 미룬다는 국민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금개혁 등 대한민국과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한 민생법안을 여야가 협의해 반드시 21대 국회 임기 내 마무리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