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의사는 정기적으로 난민촌에 이동 진료하러 가고 있었고 위중한 환자가 있으면 도미니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진료받게 해 주었다. 내가 방문한 기간에도 난민촌에 몇 달째 기침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며 같이 환자를 데리고 병원에 데리고 가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했다.
선배를 따라 도착한 환자의 집은 버려진 땅 수풀 속에 허름하게 지은 양철집이었다. 세간살이가 바깥 여기에 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은 비쩍 마른 개 한 마리가 비를 맞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환자 이름을 부르며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동굴 같은 방 안에서 비쩍 마른 젊은 여성이 기어 나왔다. 아직 씻지도 않았다며 집 뒤편으로 가 머리를 감고 세수를 했다.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했는데…’ 선배 의사는 병원 예약 시간을 놓칠까 이리저리 서성였다. 어제도 병원에 갔었는데 여권을 안 가지고 와서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우린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결핵이겠지?’ 우리는 그렇게 추측했다. 추적추적한 빗속에 어울리는 병명이었다.
30분이 지나자 환자가 나왔다. 선배 의사가 차에서 시동을 켜는 사이 나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걷는 것이 어색한 환자는 비틀거렸다. 그리고 자기를 좀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얼른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가냘픈 손일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손가락은 두텁고 쥐는 힘은 단호했다.
차까지 환자의 손을 잡고 부축하며 걸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자기를 잡아달라고 내민 손은 나를 도와달라고, 나를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심연의 소리였고 지나치지 말아야 할 소리였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