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스 란팅 “작품이 새로운 대화 계기 되길”
아슬하게 깎인 빙산 위의 턱끈 펭귄, 루앙와강을 건너는 하마 무리…. 남극, 정글, 캘리포니아를 무대로 한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서울 도심에서 마주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세계적인 야생 사진의 거장 프란스 란팅(Frans Lanting)의 대규모 개인전이 16일 아시아 최초로 서울 종로구 JCC 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프란스 란팅 : 디어포나’는 이날 개막식을 열고, 작가의 대표작 총 90점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기후위기로 인한 멸종위기 종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섹션은 △얼음나라의 황제들 △정글: 색, 소리와 향기 △아프리카, 오래된 미래 △지구, 멀리서 가까이서 △캘리포니아 와일드 △프란스 란팅의 카메라 총 6개로 구성됐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세계에서 가장 춥고 거센 바람이 부는 대륙 남극이다. 조각된 듯 날카롭게 깎인 빙산 절벽 사이로 펭귄 무리가 서 있는데, 연푸른 터키석 빛깔이 더해져 사진은 더욱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발걸음을 조금 더 옮기면 반쯤 녹은 눈 위를 걷는 젠투 펭귄들이 모습이 액자에 담겨있다. 프란스 란팅은 기후변화로 인해 남극 대륙이 따뜻해지면서 눈은 더 질퍽거리에 됐다고 설명했다. 젠투 펭귄의 이동 경로를 따라 남겨진 발자국 궤적이 마치 녹아 갈라진 빙하를 연상케 한다.
작품 옆 벽면에 적힌 ‘남극, 아우성치는 40도, 격노하는 50도, 울부짖는 60도(Antarctica, Roaring Forties, tje Furious Fifties, and the Howling Sixties)’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남극에 매료된 작가는 그 동토와 주위의 섬들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작품 ‘얼음 다이아몬드, 남극’(2016)도 그 기간 작가가 남긴 기후변화에 대한 통찰이다. 높아진 해수온으로 옆면이 깎이고 사라진 빙하는 마치 물 위에 뜬 다이아몬드와 같다.
프란스 란팅의 사진작가로서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전시공간도 4층에 마련돼 있다. 정글 한가운데 자신만의 요새를 지어 자연 세계를 두루 관찰하거나, 허리를 숙인 채 코끼리 무리와 함께 이동하는 작가의 모습이 사진 속에 생생히 담겨있다.
카메라 렌즈가 야생동물이 아닌 작가로 향해 있어 생생한 작업 현장과 자연에 대한 작가의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프란스 란팅은 1951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생으로 경제학 석사 취득 후 미국에서 환경계획학을 전공했다. 본격적으로 야생 사진작가로 활동한 뒤론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자연에 대한 열정을 바탕으로 생물다양성, 기후변화의 주요 단서가 될 사진들을 찍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이자 자연보호캠페이너로 평가받는 이유다.
프란스 란팅은 이날 열린 개막식에서 “사진작가가 되기 전 저는 환경 경제학자로 공부했었다. 그걸 공부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니즈(needs)를 균형 잡게 하는 방법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균형’이라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저는 사진의 미적 요소를 위해서 구성을 중요시 여긴다. 빛, 사진 안에서의 구조 등 균형을 잘 맞추려고 노력한다”며 “사진 한 점 마다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회를 주최한 기후변화센터의 유영숙 이사장은 “기후위기의 시급함과 생물다양성의 가치를 어렵고 딱딱한 보고서 형태가 아닌 사진이라는 예술 형식을 빌려 표현해보고자 했다”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냉철한 머리뿐 아니라 따듯한 가슴으로 직접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번 전시를 준비한 것”이라며 “작품들을 통해서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미래세대와 그린리더의 마음 속에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작지만 소중한 변화의 울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