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취임 후 10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권에 전운이 가득하다.
여당의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은 불통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야당과 소통의 물꼬를 텄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으로 대국민 소통에도 나섰지만 정국은 곧 다시 얼어붙었다. 김건희 여사 수사 라인을 모두 교체하는 검찰 인사가 단행됐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채상병 특검에 대한 거부권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여야는 채상병 특검을 둘러싸고 전면전에 돌입할 태세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건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될 소지가 크고, 특검 제도의 '보충성·예외성 원칙'이 훼손된다는 점이다. 특검은 헌법상 행정부 권한인 수사권과 소추권을 입법부의 의사에 따라 특별검사에 부여하는 제도인데, 우리 헌정사에선 여야가 항상 합의했거나 혹은 정부의 수용을 전제로 도입됐다는 것이다. 이번 채상병 특검의 경우 야당이 단독으로 강행처리 했다. 내용 역시 특별검사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또 고위공직범죄수사처(공수처)과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의 추가 수사가 개시되기 전 특별검사를 도입하는 것은 특검의 보충성, 예외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특검은 행정부 소속 수사 기관의 수사가 미진한 경우 이를 보충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특검 법안이 통과되면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거부권 행사에 대한 브리핑에서 "특검법의 근본 취지인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 자기부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의 나열이 과연 민심에 닿을지는 미지수다. 어느 조직과 사회든 원칙이 존재한다.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한다면 대단히 나쁜 정치다. 대통령실 혹은 정부가 잣대 없이 여론에 맞춰서만 움직이는 것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이 과연 헌법 질서를 강조하고, 민주당을 향해 나쁜 정치라고 일갈할 때일까. 두 달 뒤면 채 상병이 사망한 지 벌써 1년이다. 그사이 아무런 진실도 규명되지 않았고, 채 상병 사건은 여전히 미로 안에 갇혀 있다.
전날에는 대통령실이 정부 정책에 고개를 숙이는 답답한 상황마저 벌어졌다. 정부가 직구 금지령 정책을 내놓고 여론이 들끓자 사흘 만에 이를 철회한 것을 두고 여당은 저격했고, 대통령실은 사과했다. 설익은 정책을 던진, 졸속행정이라는 여론이 거세진 것이 부담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여당의 잠룡들이 일제히 비판에 가세하면서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역시 사태를 잠재울 필요성이 커진 듯하다. 지난주 윤 대통령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한다고 한 것을 두고 'R&D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미 2022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다"는 해명도 나왔다. 사과와 해명의 연속이다.
대통령실은 총선에 패한 뒤 민심을 챙기겠다며 폐지했던 민정수석실을 신설했다. 하지만 조직개편보다 민심을 등에 지지 않겠다는 진정성과 고민, 세심함이 더 필요해 보인다. 총선 전 보인 공감의 결여가 여전히 바뀌지 않은 모습도 아쉽다. 정 비서실장은 채상병 사건의 실질적 진실을 밝히고,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는 데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지켜지길 기대한다. 당심도, 이해관계도 민심 위로 올라설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