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고(故) 구하라가 '버닝썬' 사태의 실마리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3년 전 '금고 절도 사건'이 재조명됐다.
22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서는 2020년 1월 14일 구하라의 청담동 자택에 한 남성이 침입한 사건이 언급되고 있다.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 따르면, 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남성이 구하라의 자택에 침입했다. 이 남성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러보다가 문이 열리지 않자, 벽을 타고 2층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이 남성은 다른 고가품은 건드리지 않고 가로·세로 약 30㎝ 크기 금고만 훔쳐 달아났는데, 마치 집 내부 구조에 익숙한 듯 금고가 보관돼 있던 옷방으로 직행했다. 이 금고에는 귀금속 외 재테크 관련 계약서, 고인이 과거 사용했던 휴대전화 등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인의 장례 절차가 끝나 가족들이 집을 비우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구하라의 지인들은 범인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침입을 시도했다는 점과 집 내부 구조를 훤히 꿰고 있었던 점 등을 들어 범인이 구하라를 잘 알고 있는 지인이거나, 지인의 사주를 받은 제3의 인물일 것이라고 봤다. 범인이 침입한 2층 베란다와 연결된 다용도실은 금고를 보관 중이던 옷방으로 이어지는데, 외부인은 이 구조를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구하라 가족의 법률대리인인 노종언 변호사는 "범인은 금고로 통하는 최단 경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신속하게 이동했다"며 "평소에 구하라 씨가 금고에 목걸이나 귀걸이 같은 값어치가 나가는 것들, 또 본인이 재테크하면서 썼던 계약서, 예전에 썼던 휴대전화들 그런 걸 보관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기(금고)에 뭐 이거(귀금속) 외에 뭐 되게 더 중요한 게 있었나' 이런 생각도 든다"며 "구하라 씨와 구하라 씨의 지인만 아는 되게 중요한 게 뭐가 들어있지 않냐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CCTV 영상을 분석한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전문 절도범 등 절도 경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입은 옷에 야광 같은 게 번뜩이는데 전문가라면 저러지 않는다. 사람들 눈에 금방 띄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건 손 안 대고 필요한 것만 가지고 바로 나오는 형태라고 보면, 금고 속의 무언가가 진짜 시급한 사람에 의한 절도일 것"이라며 "금전 목적은 아닐 거다. 왜냐면 금고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들고나오나. 그 안이 비어있을 수도 있는데, 단순 절도범이라고 하면 당연히 다른 것도 확인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 프로파일러는 범인이 휴대전화를 노렸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그는 "휴대전화는 요즘 사설에서도 포렌식 된다. 옛날 사진, 동영상을 지웠다 해도 남는다"며 "구하라 씨의 세컨폰이라든가 아니면 다른 어떤 개인적으로 썼던 사적인 폰 같은 거라고 하면 그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시킨 거잖나. '그걸 가져와라' 이런 것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당시 경찰은 사건에 대해 9개월 넘게 수사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해당 사건이 재조명된 건 최근 '버닝썬'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공개돼서다. BBC뉴스코리아는 BBC 월드 서비스 탐사보도팀 ‘BBC Eye’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버닝썬: 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19일 유튜브에 공개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유명 K팝 스타들의 성추문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강경윤 SBS연예뉴스 기자는 "승리, 정준영 등 문제의 연예인들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폭로하는 데 구하라가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