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겸 회사 대표(CEO) 안선영이 그동안 살아왔던 삶에 대해 털어놨다.
3일 방송된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식탁'에서는 안선영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날 방송에서 안선영은 마포구 4층 신사옥 1주년 기념 파티를 열었다. 1세대 홈쇼핑 연예인으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2018년 1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사업가 변신, 이제는 건물주가 됐다.
이 건물은 1층 잡화점, 카페, 2층 사무공간, 3층 직원 휴게 공간, 4층 대표실로 이뤄져 있었다. 지하에는 라이브 커머스 스튜디오, 옥상에는 분위기 있는 루프톱까지 갖췄다. 직원은 총 50여 명의 규모를 자랑했다.
안선영은 가난했던 형편에 대해 털어놨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부산에서 제일 빈곤한 지역에서 살았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했고, 봉지 쌀을 먹었다"면서 "아버지가 떠난 후 가정주부였던 어머니가 갑자기 생존을 위해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해야 했다"고 밝혔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어머니는 화장품 대리점을 차리고, 안선영이 고2 때 지하에서 아파트로 입성할 수 있었다고. 연예인 쇼호스트 1세대인 안선영은 "화장품 누적 매출액 1조 원"을 자랑하며 어머니의 피를 받은 딸이라고 이야기했다.
어머니의 희생으로 부산 대학까지 갔지만, 뮤지컬 배우의 꿈을 위해 영국으로 떠난 그는 "티켓값 마련을 위해 차량 광택제를 팔았다. 전국 최우수 사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시급 1200원인데 한 달 반 만에 500만 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영국 3개월 단기 연수 후 더 머물고 싶어진 안선영은 "다른 애들은 금수저였다. 한식 먹으려고 비싼 돈을 내더라. 그걸 보고 직접 짜장면을 만들어줬다. 장사가 될 것 같았다"면서 살림해주는 대가로 친구들 집에서 살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이후 깍두기를 팔며 생활을 이어갔지만, IMF로 어머니 가게 망하고 빚더미에 앉게 되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안선영은 "빚이 억 단위가 넘었다. 뮤지컬 배우로는 돈을 벌 수 없어서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300만 원의 상금 때문에 시작한 개그맨 공채에 응모했고, 2000년부터 홈쇼핑에 출연해 돈을 벌었다. "연예인이 물건 판다"는 비난과 시기가 있었지만, 그는 "출연료 10만 원 더 준다고 하면 무조건 출연했다. 데뷔 4년 만에 엄마 빚을 1억4000만 원을 갚았다"고 밝혔다. 당시 잠실 아파트 한 채가 2000만~3000만 원 하던 시절이다.
이후에도 안선영은 어머니를 모셨다. 2014년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면서 딸의 손길이 필요해졌고, 안선영의 합가 제안에 남편은 흔쾌히 수락해 올해 초부터 함께 살고 있다고. 안선영은 "무뚝뚝한 성격의 남편이 너무 보기 싫은 순간이 있었는데, 내가 새벽에 나가는 날 남편이 '고구마 빵 드시고 약 꼭 드세요'라고 어머니에게 쪽지를 남겨두더라. 고마웠다"고 전했다.
현재 안선영의 남편은 아들 스포츠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아이스하키와 스키 교육을 위해 하루 4시간씩 운동, 아들 맞춤 식단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연봉을 전부 아들에게 투자하는 남편에게 '미래 대비'를 묻자 "내 미래는 아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안선영은 3살 연하 남편과의 첫 만남에 대해 "개불에 소주 먹다가 만났다. 연예인의 고정 수입 없는 불안함에 가게를 차리려고 했다. 당시 남편은 부산에서 7개 가게 운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내 명의 건물'을 갖게 된 소감을 묻자 안선영은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사 기간에 터진 악재에 고생해 마음의 병이 왔다고 고백하며 "번아웃 증후군에 조기폐경 진단을 받았다. 손발이 너무 차가워지고, 혈액순환도 안 되더라. 열정이 가득했는데,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신체나이 30대였던 안선영은 난소 나이가 55세로 나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면서 "조기 폐경 진단에 여자로서 삶이 끝난 느낌이었다. 서러웠다. 내가 나한테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 동안 강박적으로 하던 운동을 그만두고, 1년간 잘 쉬니까 정상 수치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현재는 킥복싱에 빠져있다며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