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민주주의가 붕괴 직전이다. 22대 국회 초입부터 근육 자랑에 나선 거대 야당도, 무기력한 여당도 모두 꼴불견이다. 협치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있다. 입법 지형으로 미루어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여간 무겁지 않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앞세워 그제 밤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상원’으로 통하는 법제사법위원장을 비롯해 운영위원장,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등 요직을 싹쓸이했다. 앞서 5일엔 단독으로 첫 본회의를 열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우원식 의원을 선출했다. 21대에 이어 4년 만에 다시 연출된 ‘반쪽 개원’이지만 야당 단독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폭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행 장기화는 불 보듯 하다. 국민의힘은 국회의장이 임의로 배정한 자당 소속 상임위원들의 사임계를 냈다. 나머지 7개 상임위원장까지 모두 야당이 차지하도록 놔두고 의사일정을 거부하자는 강경론도 번지고 있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어제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국회 운영을 하려는 것이라는 데 인식을 공유했고 결연하게 맞서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인식을 같이했다”고 했다. 앞으로 매일 의총을 연다고 한다.
‘뜨거운 감자’인 상임위원장 배분에 관한 명시적 철칙은 없다. 국회법은 본회의 표결 절차만 규정한다. 다만 불문율은 있다. 원내 1당은 국회의장을, 2당은 법사위원장을 맡아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게 대체적 관례다.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원장은 통상 집권당 차지였다. 적어도 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을 모두 가져간 전례는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제 작정하면 사나흘 사이에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포퓰리즘 색채가 짙은 25만 원 지원금 특별법, 운동권 셀프 특혜 논란을 키울 민주유공자법, 국가 재정 부담이 큰 양곡관리법 등도 예외가 아니다. 야당이 반대하는 민생·경제 법안들은 사장될 위기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 고준위방폐물 관리 특별법,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등이 주요 후보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입법을 가로막고 대통령은 야당 입법에 거부권으로 대항하는 밑그림이 쉽게 그려진다. ‘거부(veto) 민주주의’ 폐해가 민생을 어지럽히지 않는다고 장담할 길이 없다.
입법부의 소용돌이가 사법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법원이 불법 대북송금 의혹으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최근 실형을 선고하자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심판도 선출해야”라고 썼다. 사법부를 위협하는 성격이 없는지 스스로 따져볼 일이다.
19세기 영국 역사학자 액튼 경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다. 절대 권력에 취하면 위험한 길로 내달리게 마련이다. 박 원내대표는 여당의 거센 반발과 거부에도 불구하고 상임위를 즉시 가동해 “당장 부처 업무보고부터 요구하고 불응 시 청문회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당은 물론 국민도 안중에 없는 것 아닌가. 우 국회의장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민심과 민의를 중심에 두겠다”고 했다. 민주당의 폭주가 민심과 민의에 부합한다고 믿는지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