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광풍이다. 세계 AI 칩 시장을 지배하는 엔비디아가 18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3조3350억 달러)에 올랐다. 시총 규모가 지난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배를 웃돈다.
엔비디아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에 등극한 것은 1993년 설립 후 31년 만에 처음이다. 시작은 3D 비디오 게임을 구동하는 컴퓨터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 판매였다. ‘가성비’ 제품이란 입소문을 타고 1990년대 후반부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 무렵만 해도 창업자 젠슨 황은 서울 용산 전자상가를 누볐다고 한다. 엔비디아도, CEO 젠슨 황도 미래를 탐색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IT업계 꿈나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엔비디아가 빅테크 대명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마저 제치고 시총 선두로 나섰다. 이 순위는 앞으로 널뛰기를 하겠지만 엔비디아에 대한 시장 평가까지 널뛰기할 것 같지는 않다. 놀라운 일이다.
엔비디아가 ‘귀한 몸’이 된 것은 2022년 말부터다. 엔비디아 GPU가 오픈AI의 챗GPT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렸다. 주가는 2022년 말(액면분할 반영 14.6달러) 이후 약 1년 반 동안 9배 넘게 상승했다. 1999년 기업공개(IPO) 후 25년간 엔비디아 주식 수익률은 재투자된 배당금을 포함해 59만1078%에 달한다고 한다.
AI 드라마는 이제 막 서막을 열었을 뿐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모델 개발,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AI 패권을 둘러싼 국가 대항전도 치열하다. ‘칩스법’으로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을 끌어모으는 미국은 AI 종주국 지위도 굳혀나갈 태세다. 역시 AI 강국인 중국도 날을 세우고 있다.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A+ 행동’이란 개념을 제시했고 연구개발(R&D) 예산을 전년 대비 10% 늘린 3789억 위안(약 70조1500억 원)으로 책정했다.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등도 첨단 AI 개발에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AI 경쟁력이 걱정이다. 투자 규모부터 초라하다. 스탠퍼드대 인간 중심 AI연구소(HAI)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투자 규모는 미국이 672억 달러로 독보적인 1위다. 한국은 조사 대상국 중 9위(13억9000만 달러)로 2022년 대비 세 계단 밀렸다. 특히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이 지난해 한국의 생성형 AI 분야에 투자한 총액(7500만 달러)은 미국이 유치한 투자 규모의 0.5%에 그쳤다. 한국은 보이지도 않는 셈이다.
인재 유출 흐름도 걱정을 더한다. 국내 AI 전문인력은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국내에서 크고 배운 전문인력 10명 중 4명이 해외 직장을 찾는다는 시카고대 폴슨연구소 조사 결과도 있다. 투자, 인재에서부터 뒤처지면 미래 경쟁력은 불문가지다. 정부와 정치권은 ‘AI 기본법’부터 조속히 제정하고, 경쟁력 확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AI가 심각한 불평등을 부른다”고 경고하고 나선 판국이다. 사회적 불평등만이 아니다. 국제적 불평등도 초래될 것이다. 한국의 AI,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