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4월 총선이 끝난 후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힌 식품·외식 품목들이다. 대강 떠올린 게 이 정도고, 소비자 모르게 슬쩍 가격을 인상한 제품이나 외식 브랜드까지 더하면 셀 수 없이 많은 품목의 가격이 올랐을 것이다. 가격을 올리는 기업들은 대부분 그 원인으로 원자재를 지목한다. 원자잿값이 뛰어 생산 단가가 높아졌고, 이 때문에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이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완벽한 이유가 되긴 어렵다. 기후 변화나 코로나19 이후 산업 구조가 바뀌며 코코아, 커피 원두, 올리브 등 적지 않은 원자재의 가격이 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회사 대부분은 이런 가격 인상을 고려해 원재료 가격이 저렴할 때 미리 사 비축하기 때문에 우려보다는 가격 변동에 민감하진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이유를 들어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최근에는 가격 인상 행태가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정부가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며 업체들이 계획을 미루는 이례적인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롯데웰푸드가 대표적이다. 롯데웰푸드는 코코아 가격 인상이 장기화하면서 초콜릿 제품 가격을 5월부터 평균 12% 올리기로 했으나, '가정의 달'인 점을 고려해서 한 달 미뤘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도 가격 인상 계획을 두 번이나 미뤄 비판이 일었다. 물가 안정에 보탬이 되기 위해 시점을 늦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각각 8일, 4일 미룬 것에 불과해 실효성이 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들 업체는 '물가 안정 동참' 구호를 내걸었지만, 결과는 길어야 한 달 수준인 유예 기간에 불과했다. 결국, 조삼모사에 불과한 정해진 결말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다소 어처구니없는 선택의 기저에는 정부의 의지가 깔렸다. 정부는 매달 소비자물가를 조사해 발표하는데, 5월은 가정의 달인 만큼 상승 폭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당장 물가 통계에 잡히지 않기 위해 궁여지책을 쓴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궁여지책일 뿐이었기에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대책에 불과하게 됐다. '물가 안정'이 방점이 아닌 정책은 오히려 국민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내일의 물가는 잡았을지 모르지만, 내일모레의 물가는 더 튀어 오르는 어이없는 결과만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