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 등으로 기존 예측을 넘어서는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철저한 대비를 지시했다. 장마는 언제나 변덕스럽지만 올해는 유난하다. ‘도깨비 장마’로 불릴 정도다. 집중호우와 폭염을 오가는 극단의 변동성이 최소 다음 주중까지 이어진다는 예측이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피해는 이미 속출하고 있다. 어제 새벽 중부지방과 충북·경북권에 강한 비가 내려 도로가 침수되고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안동에서는 임동면 일대 하천이 범람했다. 영주댐 방류량이 늘면서 하천 주변 주민들이 긴급대피하기도 했다. 이 바람에 이 일대에서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된 것은 처음이다. 시간당 50㎜ 이상의 물폭탄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단발성 이변이 아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3~2022년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할 정도의 집중호우는 연평균 8.5%씩 늘어났다. 앞으로 평균 강수 강도는 16∼2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변화시나리오(SSP)에 따르면 2041∼2060년 우리나라 연 강수량은 현재보다 6~7% 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8∼11% 감소한다. 더 많은 비가 짧은 시간에 쏟아진다는 뜻이다.
전반적인 예방 태세는 합격점과 거리가 멀다. 2022년 8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서울 강남 일대 상인들은 매년 이맘때가 되면 불안에 떤다. 침수 피해가 되풀이될까 봐서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0년 이후 두 차례 이상 침수 피해를 겪었거나 집중호우 시 침수가 예상되는 강남·서초·강서구 등의 500가구 이상 아파트 13곳을 최근 조사해보니 물막이판이 설치된 곳은 3곳에 그쳤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 중인 대응 사업은 부지하세월이다. 강남역, 도림천, 광화문 등 총 3개 대심도 빗물터널은 공사비 견해차로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서울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가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일대 물막이판 설치 사업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현재 지하주택, 지하주차장의 설치율은 각각 15%, 2%에 그친다. 제도 미비 탓이 크다. 집값 하락을 우려한 시민 비협조가 걸림돌이 되는 사례도 없지 않다.
고질적인 취약 시설인 지하차도도 걱정이다.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086개 지하차도 중 182개소가 홍수 발생 시 침수 위험이 컸다. 이 중 132개소는 진입 차단시설조차 없었다. 지난해 7월 청주 오송 지하차도, 2020년 7월 부산 초량제1지하차도 참사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지방하천 복구도 더디다고 한다. 전국 방방곡곡이 지뢰밭인 셈이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100% 안전을 자신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똑같은 물난리로 똑같은 참사가 되풀이되면 그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다. 안전불감증의 병세가 워낙 깊으니 불행과 비극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유비무환의 교훈을 새삼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