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지기 전인데, 또?
연예인들의 '과잉 경호' 논란이 '또' 불거져 대중의 피로감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최신의(?) 과잉 경호 논란은 지난달 23일 아이돌 그룹 크래비티가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현장에서 불거졌습니다. 한 팬이 이 자리에서 경호원에 의해 폭행을 당했다고 전한 건데요. 병원에서 뇌진탕 소견을 받았다고 부연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졌죠.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논란이 불거진 22일 공식 입장을 내고 빠르게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마련해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인데요. 성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전해진 과잉 경호 논란만 올해 들어 수 개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란이 발생하는 장소에도 눈길이 쏠립니다. 유독 '공항'인 경우가 많은데요. 아이돌 등 스타들이 공항을 통해 입·출국할 때는 물론, 라운지에 갈 때도,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논란이 따라붙습니다. 반복되는 논란, 그리고 팬들을 대하는 시선과 처우에 지쳐 '탈케'(탈 케이팝)를 선언하는 팬들도 늘어나는 추세죠.
자신을 미성년자라고 밝힌 A 씨는 엑스(X·옛 트위터)에 "지난달 23일 크래비티 김포공항 입국 당시 경호원에게 머리를 구타당했다"며 "이후에도 경호원이 수차례 폭력을 가해 자리를 피했으나, 경호원은 저를 쫓아오며 '더 해봐'라는 식으로 조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뇌진탕 소견을 받고 경호 업체를 경찰에 신고하러 간다"고 부연했죠.
A 씨가 촬영한 영상에는 경호원이 '나오라고', '뭐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카메라를 든 팬을 강하게 밀치는 장면이 찍혔습니다. 경호원이 A 씨를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도 담겼죠.
크래비티 경호원의 손에 강하게 밀쳐진 팬들은 A 씨 외에도 한둘이 아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씨를 밀친 경호원은 JTBC에 "A 씨 손을 위쪽으로 올렸을 뿐 때릴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는데요.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소속사도 나섰습니다.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22일 밤 공식 입장을 내고 "6월 23일 크래비티의 일본 공연 및 프로모션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아티스트 경호 업무를 수행 중이던 경호원의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피해를 보신 분들 및 팬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는데요.
이어 "당시 사안을 인지한 즉시 해당 경호 업체와의 크래비티 현장 경호 관련 협력 관계를 종료했다"며 "더불어 향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경호 프로토콜 및 교육 절차를 마련해 팬 여러분과 아티스트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논란이 회자되는 건 최근 연예인 과잉 경호로 인한 논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일 불거진 배우 변우석의 '황제 경호' 논란도 잠잠해지지 않았습니다. '2024 아시아 팬미팅 투어 썸머 레터'(SUMMER LETTER)를 위해 홍콩으로 출국하던 중 변우석 측이 고용한 사설 경호원이 라운지 승객을 상대로 플래시를 쏘며 항공권을 검사하고 무단으로 공항 게이트를 통제하면서 논란을 빚은 사건입니다.
경호업체는 "변우석 측과 사전 논의가 없었다"며 선을 그었지만, 소속사의 늦장 대응으로 논란이 커졌습니다. '공항 사유화', '개인정보 침해'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변우석은 결국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됐고, 바로엔터테인먼트는 사흘 만인 15일 "공항 이용객을 향해 플래시를 비춘 경호원 행동을 인지한 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며 "게이트와 항공권 및 현장 세부 경호 상황은 당사가 현장에서 인지할 수 없었으나, 모든 경호 수행 과정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에 도의적인 책임감을 통감한다"며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늦은 사과는 상황을 잠재울 수 없었습니다. 지상파·종편 주요 뉴스에 변우석의 공항 출국 모습이 등장했고 국회에서도 해당 사안이 거론되는 등 후폭풍이 거센데요. 인천공항경찰단은 경호업체 입건 전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형법상 업무 방해죄, 강요죄, 폭행죄를 위반한 혐의가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죠. 인천공항공사는 경호원 고발을 검토 중이고,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도 "공항이 생긴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황당해하면서도 이렇게 사설 경호업체가 과잉 대응하고 엉뚱한 행동을 하는 그런 경우가 없었기에 이번 일을 계기로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밖에도 지난해 말엔 그룹 NCT 드림 경호원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30대 여성 팬을 밀쳐 늑골 골절상을 입힌 혐의(업무상 과실치상)로 검찰에 송치됐고요. 보이넥스트도어 경호원도 촬영 중인 여성 팬을 거칠게 밀어 넘어뜨려 소속사 측에서 사과했습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이지, 경호 과정에서 팬들을 강하게 밀치거나 험한 말을 쏟아내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변우석의 '황제 경호' 논란이 일파만파 커진 것도 팬을 넘어 승객들을 대상으로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라는 게 연예계 종사자들의 중론입니다. 만약 '일반인'이 아닌 팬들만 피해를 당했다면, 지금처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을 수 있다는 거죠.
물론 기획사의 사정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소속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또 사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팬들을 통제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입장인데요. 특히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팬 사인회, 콘서트, 공항 입출국 현장 등 오프라인 행사에선 더욱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중에서도 공항에서는 연예인들이 도보로 이동하게 되면서 혼란이 심화합니다. 경호원들도, 팬들도 연예인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데다가 카메라를 든 취재진까지 따라붙습니다. 사진만 찍으면 다행이고요. 이를 유튜브 라이브 방송 등으로 생중계하기도 합니다.
주로 이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합니다. 인파가 좁은 공간에 갑자기 몰리면서 사람들이 뒤엉키고, 경호원들은 연예인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죠.
그런데 사실 이는 연예계의 폐해기도 합니다. K팝을 필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는데요. 공항에도 '돈'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이돌, 배우 등 화제성 있는 연예인의 입출국에는 협찬이 따라붙곤 합니다. 이들이 착용하는 옷부터 가방, 액세서리 등이 '공항 패션'으로 화제를 빚기 때문인데요. 연예인이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한 모습으로 협찬 브랜드는 제품을 간접 광고하고, 기획사는 돈을 받습니다. 이에 협찬 브랜드와 기획사는 연예인의 입출국 일정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립니다. '[○○엔터테인먼트] 그룹 XXX, 24일 오전 11시 인천공항 출국 관련 취재 요청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메일 등으로요. 이 메일에는 연예인이 이용할 터미널부터 게이트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죠.
이때 입출국 정보가 외부에 노출되는 일도 있습니다. 일부 인터넷 매체는 입출국 현장을 유튜브 라이브 등으로 송출하는데, 이런 식으로 출국 정보를 얻은 이른바 '사생(스토킹 등으로 유명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람들)'들이 공항으로 향하게 되는 겁니다.
과잉 경호 논란의 무대가 공항인 경우가 잦다 보니, 일각에서는 "공항에서 연예인 패션쇼 못하게 하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콘서트나 팬 사인회처럼 팬들만 이용하는 공간이 아닌 만큼 질서가 우선이라는 거죠.
논란은 공항 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부 사생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연예인의 항공권 정보를 취득합니다.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X 등 익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 등에선 항공권 거래가 오가는데요. 과잉 경호 논란을 빚었던 NCT 드림, 변우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얻어낸 항공권 정보는 주로 연예인들의 옆자리를 예약하거나 이들의 좌석, 기내식 메뉴를 바꾸는 데 사용됩니다.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멤버 태현은 지난달 팬 소통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누가 멤버들 좌석의 기내식만 예약해서 바꿔놨다"며 "안 먹으면 그만이긴 한데 왜 그러는지, 시스템이 어떻길래 그렇게 다른 사람 것도 변경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죠.
앞서 국내 최대 가요기획사 하이브는 아티스트 항공권 정보를 불법 취득하고 이를 거래한 혐의를 받는 일당을 경찰에 고소했고, 이들이 검찰에 송치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이브에 따르면 이들은 정보를 불법 취득해 같은 항공기에 탑승하는 것은 물론 몰래 촬영하고 접촉을 시도하는 행위를 벌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안전이 우선 돼야 할 공항, 심지어 항공기 안에서 이 같은 혼란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급속도로 이뤄진 연예 산업의 성장 속도를 부가 산업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황제 경호' 논란을 빚는 경호 업무엔 자격 제한이 없는 게 부지기수고, 공항에 팬들이 집결하거나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걸 제재할 근거도 없습니다. 향후 연예 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안전 문제를 비롯한 연예계 폐해에 대한 고민과 세부적인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또 대다수가 젊은 여성인 K팝 팬들을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만연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안전 조치에 나서는 것과 팬들을 존중하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하는데요. 이와 동시에 성숙한 팬 문화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