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차관의 연금 이야기] ③ 100년을 내다본 일본 연금개혁

입력 2024-07-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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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20년 전 초고령사회 진입 ‘적색등’
장기간 요율인상·치밀한 제도설계
국회는 국가대계 차원에서 뒷받침

제5차 재정계산 등 연금개혁을 앞두고 일본의 사례를 살피고자 2022년 말 도쿄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의 고령화율은 18%인데 비해 일본의 고령화율은 29%를 넘어선 시점이었다. 현지에서 정부 및 전문가를 만나면서 떠올린 일본 연금개혁의 단초는 역시나 ‘고령화’였다.

일본은 급격한 고령화에 대비해 2000년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같은 개호보험을 도입한 데 이어 2004년 대규모 연금개혁을 이뤘다. 이뿐 아니라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의 대규모 퇴직 등 노동인구의 감소에 대응하고자 2010년 고령자 고용연장 및 여성고용 창출도 단행했다.

연금개혁을 놓고 흔히 ‘코끼리 옮기기’라고들 한다. 전 국민의 삶과 직결되면서도 인구·경제 구조 전반을 고려해야 하는 크고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연금개혁은 고령자 증가로 수급자는 느는 반면, 출생아 감소로 보험료 납부자는 줄어든 것이 주 요인이었다. 특히 2004년은 초고령사회(노인인구 20%) 도달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일본 연금개혁의 비결은 무엇일까. 과연 어떻게 보험료율 인상, 연금수령액 삭감, 수급연령 상향이라는 벽을 깬 것일까. 현지에서 만난 후생노동성 관료와 연금개혁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보험료율의 단계적 인상과 거시경제 슬라이드, 정치적 리더십을 주된 비결로 꼽았다.

먼저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을 살펴보자. 2004년 13.934%이던 보험료율을 매년 0.354%포인트(p) 인상, 2017년 18.3%를 달성했다. 당시 개혁 참여자들은 “보험료율을 과감히 높여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13년간 서서히 올려 개인과 경제에 부담을 덜 수 있었다”라며 “보험료율 18.3%는 애초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으로 논의되던 20%보다는 낮았고, 그 이상은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 큰 효과를 봤다”라고 밝혔다.

다음으로 살펴볼 거시경제 슬라이드는 출산율이 떨어져 가입자 수가 감소하거나, 수급자의 평균수명이 증가하여 재정 부담이 늘어날 때 그만큼을 연금액에서 조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일본은 스웨덴(1999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를 도입했다. 2015년 당시 2.3%p 인상될 뻔했던 보험료율이 거시경제 슬라이드로 인해 0.9%p 인상으로 조정됐다. 이 제도는 5년 주기의 재정검증에서‘향후 100년간 적립금 보유가 어렵다’는 결과가 나올 때만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2004년 도입 이후 실제 적용된 것은 2015, 2019, 2020, 2023년 네 차례였다.

정치적 리더십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후생노동성은 연금개혁과 관련된 회의자료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했다. 여기에 5년마다 실시하는 재정계산 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한 제도설계로 국회를 설득했다. 국회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리더십과 국가대계 차원에서 개혁을 지지하는 자민당 중진 인사들이 호응했다. 당시 연금개혁 과정을 지켜 본 현역 연금국장은 “여야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최종 상황에서 총리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연금개혁을 성공케 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2004년 개혁으로 100년간의 재정안정을 이뤘다. 국민연금(우리나라 기초연금)·후생연금(우리나라 국민연금)·퇴직연금 간 역할을 적절히 분담시킨 다층노후소득보장체계, 즉 구조개혁을 달성한 것이다. 일본의 국민연금은 근로자, 자영업자, 무소득 배우자 등 전 국민이 의무가입하는 제도로, 65세부터 정액 급여를 지급한다. 재원은 보험료와 조세다. 후생연금은 65세부터 소득과 가입 기간에 비례해 연금을 지급한다. 퇴직연금은 임의가입 형태로 확정기여형, 확정급여형 등으로 구분해 운영된다.

우리 노인인구는 지난 10일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곧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일본 개혁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보험료율의 점진적 인상과 상한선 설정, 거시경제 슬라이드 도입, 관료의 치밀한 제도설계와 국가대계 차원의 국회의 결단력은 우리가 특히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100년을 내다보는 연금개혁을 위해 ‘채장보단’(採長補短·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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