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평가기준 51개, 향후 6년간 매년 진행…불인증시 신입생 못 받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본격적으로 의과대학 평가 절차에 돌입하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 절차에 제동이 걸릴지 주목된다. 정원이 늘어난 의대 30곳이 평가를 받게 되면서 의료계에서는 교육의 질적 하락과 무더기 불인증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31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의평원은 의학교육 평가인증 주요변화평가 계획 설명회를 진행했다. 의평원은 8월 31일까지 평가 대상 대학으로부터 주요변화평가 신청서를 접수하고,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평가를 진행한다. 최종 결과는 내년 2월에 각 대학에 통보할 예정이다.
이번 주요변화평가 계획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확정하면서 추진됐다. 재학생 수의 급격한 증가는 교육 및 환경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변화’로 간주되며, 의평원은 각 의대가 변화 3개월 전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내년도 입학 정원이 증가한 의대 32곳 가운데 증원 규모가 기존의 10% 이상인 30곳이 평가 대상으로 지목됐다. 전국 의대 40곳 중 서울 소재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이 평가대에 오르는 셈이다.
대학들이 평가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평원이 전날 설명회에서 강화된 평가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의평원은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ASK2019) 92개 가운데 15개를 활용하는 기존 지침과 달리, 51개를 활용하기로 했다. 또한 기초의학·임상의학 분야별 교원 확보 계획, 교육시설과 교수실 확보 계획 등을 담은 주요변화 계획서를 평가 대상 의과대학이 의평원에 11월 30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아울러 의평원은 2029년까지 향후 6년 동안 동일한 평가를 매년 시행해 계획이 이행되고 있는지 지켜볼 예정이다.
평가가 까다로워지면서 의대 정상화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의평원의 평가 인증은 의대 운영에 필수적이어서다. 고등교육법은 모든 의대가 의평원 평가 인증을 의무적으로 통과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불인증 의대는 신입생을 모집할 없게 된다.
정부도 의대 증원을 계획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이 평가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은 대학에 입학한 사람에게만 의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있어서다. 불인증 의대는 신입생을 받아도 의사를 배출할 수 없다.
이에 교육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의대에 대한 주요변화평가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대학 의견 등을 바탕으로 주요변화평가 계획을 심의하고 결과에 따라 이행 권고 또는 보완지시를 하겠다”라며 수습에 나섰다.
최악의 경우 불인증으로 폐교 수순을 밟는 제2의 서남의대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서남의대는 2017년 3월 의평원으로부터 불인증 통보를 받고 재심도 신청하지 않았다. 이에 교육부는 서남의대에 신입생 모집 금지를 통보했다. 서울시립대, 삼육대 등과 인수 논의가 무산되면서 폐교됐다. 당시 서남의대 정원은 학년 당 49명이었으며, 폐교 이후 2018년 정원은 원광대 의대가 15명, 전북대 의대가 34명을 각각 수용했다.
정부가 의평원과 협의를 예고하면서 의·정 긴장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정부가 의평원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평가에 개입을 시도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9일 입장문을 통해 “의과대학의 방대한 교육량과 빡빡한 학사행정을 생각하면, 대량 유급과 휴학은 이미 되돌릴 수 없으며, 내년도 신입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국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교육부에서 의평원에 대해 평가·인증 기준, 방법 및 절차 등 변경 시 인정기관심의위원회 사전 심의를 받도록 조건을 부가했고, 그 절차에 따라 교육부와 의평원 간 적절한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