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필리핀 출신 가사관리사 100명이 6일 한국에 들어온다.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하는 첫 사례다. 서울시가 제안하고 고용노동부가 협업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본궤도에 오른다는 뜻이다. 돌봄 서비스의 확대는 국가적 난제인 저출생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한국 땅을 밟는 ‘필리핀 이모’들은 군대로 치면 ‘돌봄 서비스’ 행군을 앞에서 이끄는 첨병이다. 이번에 성과가 나오면 본진이 뒤따를 수도 있다.
외국인 도우미는 경력과 육아·가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젊은 부부들에게 큰 희망이다. 시범사업에 선발된 필리핀 이모들은 24~38세로, 필리핀 정부에서 인증한 ‘돌봄’ 자격증을 갖추고 있다. 필리핀에서 사전교육을 받았고 다음주 입국 후엔 2박 3일 외국인 근로자 교육에 이어 4주간 가사관리·아이 돌봄 실무, 산업 안전,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게 된다. 일을 시작하는 것은 9월부터다. 몸과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는 이 땅의 젊은 부부, 워킹맘들에게 새 원군이 등장하는 것이다. 여간 반갑지 않다.
문제는 대다수 가정이 이들의 도움을 쉽게 청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신청 경쟁도 경쟁이지만 비용의 벽이 너무 높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을 도우미 제도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겐 ‘화중지병(畵中之餠·그림의 떡)이 된다면 그처럼 허망한 일도 없다. 굶주린 배를 그림의 떡으로 어찌 채우나. 되레 허기와 갈증만 커질 판국이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시범사업 서비스는 4·6시간(시간제), 8시간(전일제)을 택일할 수 있다. 필리핀 이모가 주5일 하루 8시간 근무하면 이용자 부담액은 200만 원을 넘어선다. 국내 20, 30대 여성 근로자 10명 중 8명은 한 달에 300만 원 벌기 어렵다는 통계가 있다. 과연 이들 중 몇 명이나 필리핀 이모의 과중한 임금을 감당하려 하겠나.
서울시는 지난달 17일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강남 3구 위주로 몰리는 추세가 확연하다고 한다. 도우미 임금이 시간당 1만3700원 수준으로 높게 책정되다 보니 특정 지역과 계층으로 수요가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에게 돌봄 시장을 개방한 홍콩과 싱가포르는 우리와 달리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홍콩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2797원, 싱가포르는 1721원이다. 왜 형편이 나을 게 없는 한국에선 그 5~8배를 부담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화중지병’을 자초하는 난맥상 아닌가.
정부는 최저임금제, 국제노동기구(ILO) 차별금지협약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은 지난 3월 ‘돌봄 서비스 인력난과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내고,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사적 계약 형태로 외국인 도우미 공급을 늘릴 수 있다고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했다. 인구문제라는 대의명분으로 노동계를 설득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대안도 있다. 일본 독일 등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은 출산·육아 부담 때문에 일을 포기한 경력 단절 여성이 무려 140만 명인 나라다. 정부는 핑계만 찾을 게 아니라 길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