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자금 잠깐 가져다 쓰고 금방 상환"…"그게 바로 횡령"
덩치만 커지고 규제 전무…"방치하면 제2, 제3의 구영배 또 나올 것"
"(쇼핑 플랫폼이 정산대금을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신규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온라인에서 성공한 많은 기업이 실질적으로 그렇게 운영해 왔고 자본시장을 활용해 규모를 키워왔거든요."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가 지난달 30일 티몬ㆍ위메프(티메프) 정산금 미지급 사태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한 발언이다. 이는 이커머스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5월부터 발생한 판매자(셀러) 정산 지연금 피해 규모만 1조 원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소비자 환불 요구가 빗발치는 와중임에도 구 대표의 이 같은 '해괴한 경영 철학'에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1세대 이커머스 성공 방정식을 썼던 구 대표의 뻔뻔한 민낯은 과거 성공에 가려져 이제야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구 대표는 계열사 자금을 빼돌려 타 계열사 인수에 유용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큐텐이 북미권 쇼핑플랫폼 위시를 인수과정에서 티메프 자금 400억 원(2500만 달러)을 가져다 쓰고 한 달 만에 상환했다는 그의 발언에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게 바로 횡령"이라고 일갈했다.
타 플랫폼 대비 과도하게 긴 정산주기에 대해서도 그는 "업계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커머스업계는 티메프만의 관행이라고 반박한다. 티메프와 사업구조가 비슷한 네이버쇼핑과 옥션·G마켓, 11번가 등은 소비자 구매확정 기준 1~7일 내 셀러에게 대금을 정산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에스크로를 도입하거나 정산 계좌를 두고 판매대금을 별도 관리하고 있다. 구 대표가 판매대금 행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업회생 신청'이라는 벼랑 끝 상황에서도 구 대표는 황당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상태다. 그는 "다시 (티메프 영업을) 정상화시켜 주시면 모든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가 복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티메프 공공플랫폼 전환에 대해 이커머스업계는 '근거없는 플랜'이라고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구 대표의 근거없는 자신감은 G마켓, 쿠팡 등 상장과 대규모 투자유치를 통해 이뤄낸 이커머스 플랫폼 성공 사례가 티메프에도 적용될 것이란 안이함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영진의 모럴 해저드와 정부 당국의 '규제 사각지대'가 구영배라는 밑천 없는 이커머스 경영자를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급속히 성장한 이커머스 시장 규모에 걸맞은 제도와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제2의 티메프 혹은 제2의 구영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