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구글서 중추적 역할
경영진 반대에도 유튜브 인수 강행
구글 최초ㆍ최다 유급 출산휴가 기록
구글의 원년 멤버이자 유튜브 인수를 주도해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시킨 수전 워치츠키 전 유튜브 최고경영자(CEO)가 2년가량의 폐암 투병 끝에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워치츠키의 남편 데니스 트로퍼는 전날 저녁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랑하는 아내이자 다섯 자녀의 어머니였던 수전이 2년 동안 폐암을 앓다가 우리 곁을 떠났다”면서 “그가 우리 가족과 세상에 끼친 영향을 헤아릴 수 없다”고 밝혔다.
워치츠키는 1968년 7월 5일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태어났다. 그 지역이 실리콘밸리라고 널리 알려지기 불과 몇 년 전 무렵이다. 세 자매 중 장녀로 폴란드계 미국인인 아버지가 물리학과에 재학중임에 따라 스탠퍼드대 캠퍼스 내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러시아계 유대인 기자로 후에 인근 팰로앨토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역사와 문학을 전공하고, 캘리포니아대 산타크루즈 캠퍼스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베인앤드컴퍼니 등을 포함한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인텔의 마케팅 부서에 입사했다.
인텔에 근무하는 동안 남편과 함께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있는 신혼집의 1층과 차고를 구글을 공동 창업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 1998년 임대했다. 그렇게 그 차고는 구글의 탄생지가 됐다. 실리콘밸리에서 그를 ‘구글의 어머니’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유다.
1999년에는 구글의 16번째 직원으로 회사에 합류해, 지난해까지 약 20년 동안 구글이 거대 기술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초창기 알타비스타 등과 경쟁하고 있는 구글의 신규 검색엔진을 마케팅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당시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극복하는 방책으로 다른 웹사이트들이 자체 페이지에 구글의 검색 상자를 설치하도록 허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는 구글이 세계 1위 검색엔진으로 입지를 다지게 하는 주요 동력이 됐다.
특히 워치츠키는 다른 구글 경영진의 반대에도 2006년 유튜브 인수를 주도해 구글 성장의 또 다른 결정적 모멘텀을 만들어냈다. 2014년에는 유튜브 CEO로 취임해 유튜브를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TV를 재창조한다’는 비전을 바탕으로 광고사업을 확장시켰고, 연간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구독 상품도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구글의 가장 성공적인 인수로 유튜브를 꼽는다. 구글이 검색엔진 사업에서 벗어나 사업을 다각화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평가된다.
그는 2019년 4월 70대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깜짝 방한한 적도 있다. 보이치키는 박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내 꿈은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워치츠키는 지난해 가족, 건강, 개인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유튜브 CEO 자리를 내려놓고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고문으로 남았다.
그는 닭을 키우고 미니밴으로 아이들을 축구 연습에 데려다주는 등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5명의 자녀를 둔 워치츠키는 워킹맘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유튜브 CEO로 취임했을 당시 15주간의 출산휴가를 사용하면서 미국이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정부에서 의무화한 유급 출산 휴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구글의 최초ㆍ최다 출산휴가를 간 직원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워치츠키의 다섯 자녀 중 아들 마르코 트로퍼는 2월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검시관은 사인을 우발적 약물 과다로 판결했다.
워치츠키의 어머니인 에스더는 장녀를 포함해 세 딸을 모두 성공적으로 키워내 이를 바탕으로 2019년 ‘성공한 사람으로 키우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둘째 딸은 의대 교수다. 막내인 앤 워치츠키는 DNA 검사 기업인 23앤미의 CEO이자 공동 창립자이다. 또 브린과 결혼했으나 2015년 이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