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사)케이썬 이사장ㆍ미래학회 부회장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러시아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좌우대립 내전을 겪었고, 독립 후에도 1939년 러시아(소련)의 침략을 받아 겨울전쟁이라는 혹독한 전쟁을 치렀다. 1950년대까지 핀란드는 농업 국가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전쟁 배상을 요구함에 따라 핀란드는 산업화를 시작했다. 지금은 첨단산업이 강한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의 선진국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크게 같은 점이다.
다른 점은 핀란드는 인구가 560여만 명에 불과하여 유럽에서도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이다. 좌우 내전을 극복하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건설하였고, 주변 강대국들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외교노선을 추구하였다. 2차대전 후 국가안보와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여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 실용주의를 견지하였다.
핀란드는 의원내각제 국가로 외교적으로는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유지하며 유럽의 경제통합에 우회적으로 참여하여 서방권과 경제 교류를 확대했다. 소련 붕괴 후에 실질적인 자주성을 회복하고 유럽연합(EU)에 가입하였다. 독립국가였지만, 자주성을 회복하였다는 것은 핀란드가 견지한 핀란드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냉전 시기에 동구의 위성국가와 별 차이가 없는 핀란드의 처지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서독의 어느 정치가가 핀란드를 향해 자존심도 줏대도 없이 소련과 서방 진영 양쪽에 빌붙는 박쥐 같다는 경멸의 의미로 처음 사용하였다. 현재는 실용적 외교정책으로 친소 중립을 취했으나 내부로는 자본주의 원칙을 견지한 경제발전과 복지국가라는 성과를 얻은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한마디로 핀란드는 타협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국들의 위협 속에서 타협을 통하여 국가의 분열(독립 과정의 좌우 내전)을 극복하여 독립 후에도 친소 정책으로 안보위협을 완화하고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서방 유럽과의 경제 교류를 통하여 성장하는 타협적인 실용주의를 보여주었다. 그 타협의 중심에는 국민이 제일 우선이라는 정치인, 지도자들의 안목이 있었다. 줏대없는 타협주의 노선이라고 주변국이 비아냥거렸지만, 현재 핀란드는 수년째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가장 지속가능한 나라로 여기는 국가로 선정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가장 비타협적인 대립과 갈등이 심하고, 국민들의 행복도가 낮은 나라가 되고 있다.
핀란드가 이후에도 타협적인 정책을 유지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데는 미래에 대한 높은 관심과도 관련이 있다. 핀란드는 거의 30년 동안 정부와 의회 간에 미래에 대한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1993년부터 정부는 의회 임기(4년)마다 의회에 제출하는 미래 보고서를 통해 핀란드의 미래와 관련된 장기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다. 국회의 미래위원회는 국무회의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정부 보고서에 대한 의회 의견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정부는 매년 정부 연례 보고서를 통해 미래 보고서에 따른 조치의 진행 상황을 의회에 보고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래 보고서는 미래를 준비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핀란드를 건설하는 데 기여한다. 핀란드가 미래 보고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정부와 의회에서 미래에 대한 전반적인 공유된 이해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핀란드와 국제 정세, 사회, 기술, 경제, 환경 및 정책 변화와 이와 관련된 불확실성, 그리고 미래를 위한 대안적 발전 경로에 대한 전망을 제공하여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물론, 의사결정에 따른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핀란드의 성공 원인은 타협의 중심에 굳건한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