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정산 단축ㆍ에스크로 도입에 "취지 공감하나 현실화? 글쎄"
해외 플랫폼과 형평성 이슈ㆍ독과점 이슈 따른 중소 플랫폼 '위축'도
'8월 법 개정안' 마련에 "업계 입장 반영 촉박, 하위규정 통해 수렴해야"
정부가 티몬ㆍ위메프(티메프) 미정산 피해 재발을 막겠다며 다각도의 규제 강화 방침을 밝힌 가운데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식의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왔다. 과도한 규제로 인해 해외 플랫폼과 경쟁해야 할 국내 업체들의 발목을 잡고, 자본력은 약하나 혁신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 플랫폼과 입점업체들의 입지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법무법인 광장 세미나실에서 서강대학교 ICT법경제연구소 주최로 열린 유통 규제 개선 포럼 '티메프 사태 관련 긴급 좌담회'에서 공정거래법 관련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좌장으로 나선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티메프 사태에는 입점업체ㆍ피해자뿐 아니라 결제를 대행한 PG사와 금융회사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엮여 있다"면서 "현 정부 정책은 가장 약한 고리를 보호하면서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현재 이커머스 부실이 판매자·소비자에게 전이되는 피해를 막고 전자상거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커머스(통신판매중개업자), PG사 정산기한 도입 및 판매대금 별도 관리 의무 신설 △PG사 관리·감독 강화 △상품권 발행업체 규율 강화 및 소비자 보호 강화 △우수 이커머스 인센티브 신설 및 판매자 보호조치 강화를 예고했다. 공정위 역시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대상에 이커머스 사업자를 포함하고 판매대금 정산기한 준수와 대금 별도 관리의무 규정, 이머커스 정산주기를 오프라인 업체보다 짧게 설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홍 교수는 이커머스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회계 투명성 제고와 금융감독 관리 강화, 규제 강화 목소리에 대해 "정상적인 외양간을 다 때려고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규제 강화는 새로운 혁신을 막을 뿐 아니라 형평성 이슈 등으로 알리ㆍ테무ㆍ쉬인과 같은 대형 C커머스만 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금 정산주기 단축 이슈에도 실효성 우려가 제기됐다. 심재한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산주기 단축의 당위성은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문제는 정산주기 단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 볼 여러 상황이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더 짧은 정산주기를 도입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 "현실과 괴리가 크다"면서 "쿠폰거래 역시 40일 이내 정산하도록 법 적용을 받고 있지만, 정산기준 시점이 모호해 실 적용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판매대금 별도관리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현규 변호사(김앤장)는 "통신판매중개업에 에스크로(은행 등 제3자가 대금을 맡아둔 뒤 결제 확정할 때 정산하는 시스템)가 도입될 경우 이와 거래구조가 유사한 특약매입, 위수탁거래, 매장임대 등에도 에스크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강화가 국내 온라인 사업자에게 적용돼 국내 업체의 양극화 현상과 더 나아가 해외 플랫폼의 외형 확대와 국내 데이터주권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난설헌 연세대 교수는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상위 업체를 중심으로 한 재편은 당연한 절차로 보이나 공정거래법상에서 보면 플랫폼 독과점을 우려하는 부분도 중요한 화두"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독과점을 우려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건전성 측면에서 (차라리 대형화를 통한 독과점이) 낫다고 하는 상충적 측면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익 변호사(법무법인 선운)도 "국내 기업들이 중개플랫폼 주도권을 해외에 빼앗기게 될 때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시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사는지, 무엇을 쓰는가에 대한 정보를 국내에서 보유하지 못하고 외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면서 "국내 사업자들에게만 너무 강력한 규제를 지우는 부분과 관련해 다른 부작용은 없을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촌각을 다투는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마련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박정서 변호사(김앤장)는 "일반적으로였다면 공정위도 표준약관이나 표준계약서 개정을 통해 시스템을 정비할 시간을 줬을 텐데 워낙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보니 국민을 안심시키는 방향(8월 중 유통업법 개정)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 변호사는 이어 "일단은 굵은 줄기를 설정하고 세세한 부분은 하위 법령에 위임해 업계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일몰규정을 활용해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