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본예산보다 3.2% 증가한 677조4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어제 발표했다. 내년도 경상성장률 전망치(4.5%)보다 낮은 긴축 재정이다. 총수입과 총지출은 각각 6.5%(39조6000억 원), 3.2%(20조8000억 원) 늘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효율적인 재정 운용을 위한 정부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을 담았다”고 했다.
2년째 총지출 증가율이 3% 내외로 묶였다. 쉽지 않았을 선택이다. 이로써 윤 정부 3년간 총지출 증가율(본예산 기준)은 역대 최저인 연평균 3.9%를 기록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8.6%)와 크게 대조된다. 문제는 지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마른 수건을 짜내야 한다. 내년 총지출 증가분보다 많은 24조 원 규모로 추진된다. 유사 중복 사업은 통폐합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행적·비효율적 사업을 과감히 축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돈줄을 조이면 반발이 생기고 잡음이 나게 마련이다. 경각심을 갖고 예산 집행효율을 높여야 한다.
내년 나라살림은 법제화 이전인 재정준칙 범위 내에서 선제적으로 관리된다. 예산안에 따르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77조7000억 원으로 올해 예산(91조6000억 원 적자)보다 13조9000억 원 줄어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올해보다 0.7%포인트(p) 하락한 2.9%로 재정준칙 한도(3.0%) 이내로 들어오게 된다.
예산 집행은 사회적 약자 복지, 경제 활력 확산, 미래 체질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금을 포함한 보건복지부 예산은 역대 최대인 125조6565억 원으로 편성됐다. 연구개발(R&D) 예산은 올해보다 11.8% 늘어난 29조7000억 원 규모로 짜였다.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3대 게임체인저 분야 투자를 늘린다. 원전, 방산, 반도체 등 신성장동력 육성 지원, 유망 중소기업의 점프업 프로그램 신설도 눈에 띈다.
세수 감소 대책, 내수 부양은 아픈 손가락이다. 정부가 예상하는 내년도 국세수입은 382조4000억 원이다. 애초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제시했던 목표보다 19조 원가량 적다. 2년 연속 대규모 결손을 피할 수 없지만 뚜렷한 대응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내년 경제성장률 둔화 전망이 우세한데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도 기대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재정 부담이 크게 늘면서 정부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다. 예산안 운신의 폭이 좁아진 데 대해 이전 정부에 화살을 돌린 것이다. 2017년 660조 원이었던 국가채무는 2022년 1076조 원으로 늘었다. 지난 정부 5년간 400조 원이 급증했다. 대통령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답답한 감도 없지 않다. 언제까지 전임자 탓만 할 것인가.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을 자극하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건전재정은 국가 미래가 걸린 과업이다. 지구촌엔 반면교사가 수두룩하다. 국회는 ‘25만 원 지원법’ 같은 선심성 정책은 내려놔야 한다. 지역구 민원사업이 심의과정에서 끼어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재정준칙 법제화도 서두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