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하면 “의협, 의료 멈추겠다”…불발되면 보건의료노조 반발 예상
의대 증원과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싼 갈등으로 병원 운영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커졌다. 의사단체는 이날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반면 간호사들과 병원 근로자 단체는 파업을 불사하고 간호법 제정과 처우 개선을 요청하고 있다.
28일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법을 ‘특정 직역 이익 위해 국민생명 담보잡고 직역갈등 격화시킨 악법’으로 규정하고 간호사의 불법의료행위로 인한 피해신고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간호법은 직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전공의 수련 생태계를 파괴하는 의료악법인 동시에, 간호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자충수의 법”이라며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되고,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데 따른 혼란 등으로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그 피해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건의료계 직업군 사이에 형평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의협은 “간호사만 단독법을 만들어주면 형평성에 어긋나는데 어떤 핑계로 거부할 것인가”라며 “협업과 상생은 옛말, 직역 간 각자도생의 분열과 반목 속에서 국민건강과 생명은 뒷전이 될 것이 자명하여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PA에 의한 불법 무면허 행위에 면죄부가 생기고, 간호사의 의사 행세가 가능해져 결론적으로 이 땅에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의사에 의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따윈 어울리지 않는다”라며 “근거 없는 의대 2000명 증원에 이어 간호악법까지, 이 나라는 의사를 국민의 일원이 아닌 주적쯤으로 여기는 듯하다”라고 날을 세웠다.
간호법 제정안은 그간 의료법 위반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진료지원(PA) 간호사를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PA간호사는 수술과 치료 행위를 보조하면서 의사에게만 허용된 업무 일부를 사실상 대신해 왔다.
올해 2월 전공의들이 사직한 이후 대학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에서 간호사들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PA 간호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전날 국회에서 여야가 법안에 대해 전격 합의하면서 이날 본회의 통과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의사 단체가 집중적으로 비판했던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보건복지부령에 위임하기로 했다. 여당은 법안에 업무 범위를 ‘검사, 진단, 치료, 투약, 처치’ 등으로 명시하자고 주장했지만, 야당은 이 범위가 과도하게 넓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간호법은 대한간호협회를 비롯한 간호사 단체들의 숙원이다. 지난해 21대 국회에서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좌절된 바 있다. 당시 국회 재표결도 부결되면서 최종적으로 폐기됐다가 이번 국회에 되살아났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간호사는 의료법에 명시된 5대 보건의료인(의사·치과의사·한의사·간호사·조산사) 가운데 유일하게 단독법을 가진 직종이 된다. 간호사의 업무, 권리와 의무 등이 명확해지는 것은 물론, 장시간 근무와 저임금 등 고질적인 처우 문제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간호계는 전망하고 있다.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근로자들로 구성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간호법 본회의 상정에 대해 ‘의료대란 해결 청신호’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보건의료노조는 “불법의료행위에 내몰려온 PA간호사들의 의료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될 것”이라며 “의사인력 부족과 전공의 진료거부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을 해결하고, 의료대란을 극복하면서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PA간호사 업무 범위와 자격요건을 명확하고 엄격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후속 과제를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공의 진료거부 사태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부는 98개 의사업무 중 89개 업무를 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 과정에서 임상경력이 없는 신규간호사와 아무런 교육·훈련도 없이 일반간호사를 PA간호사로 투입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PA간호사들은 의사도 아니면서 위험도와 난도가 높은 의사업무를 떠맡아야 하는 부담에 시달렸고, 환자들은 심각한 의료사고 위험으로 내몰렸다”고 덧붙였다.
의사 단체가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태라며 비판했다. 의사 일손이 부족해 PA간호사가 생겨났고,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하면서 PA간호사가 급속하게 늘어났는데 PA간호사 제도화를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 증원도 반대하면서 PA간호사 제도화도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고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간호법 제정안의 본회의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의료계 혼란은 당분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과 보건의료노조 양측 모두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예고한 상황이다.
의협은 전날 오후 9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국선언을 진행하고 의대 증원, 간호법 제정,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을 모두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14만여 명의 의협 회원들이 의료를 멈추겠다면서 ‘최후의 통첩’임을 강조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불법 의료 근절과 업무 범위 명확화,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61개 의료기관 소속 2만9000여 명이 29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
이날까지 9개 병원 13개 사업장이 2차 조정 회의를 거쳐 노사 교섭을 타결해, 실제 파업에 나서는 조합원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의료노조는 간호법이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대정부 협의와 노사 교섭도 긍정적 분위기에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