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 개원 후 여야가 처음으로 민생법안을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했다.
국회는 28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간호법ㆍ전세사기 특별법·서민금융지원법·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과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등 총 28건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특별법) 표결에는 재적 의원 300명 중 295명이 참여했고,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졌다.
개정안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낙찰받아 공공임대주택 형태로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주택에서 기본 10년 동안 거주할 수 있고, 원할 시 일반 공공임대주택 수준의 임대료를 내고 10년간 추가로 거주할 수 있다.
피해주택에서 거주하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 경매 차익을 받고 퇴거하거나 LH가 직접 전세 계약을 맺은 민간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도 대폭 확대됐다. 임차보증금 한도를 기존 ‘3억원 이하’에서 ‘5억원 이하’로 상향했다. 피해지원위원회 의결로 2억원을 추가로 인정받으면 최대 7억원 구간의 세입자도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정안은 일부 피해주택 매입 관련 규정을 제외하고 공포 즉시 시행된다.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는 상속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구하라법’(민법 개정안)도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구하라법은 앞서 20·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된 적 있지만 매번 임기 만료 폐기됐다. 이날 본회의에선 재석 의원 286명 중 찬성 284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개정안은 법적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한 학대 등 범죄를 저질렀거나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상속권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2019년 사망한 가수 고(故) 구하라 씨의 오빠 호인 씨가 ‘가출한 친모가 상속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입법을 청원하면서 법 개정의 불씨가 붙었다.
의료계의 오랜 쟁점이었던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이르면 내년 6월부터 합법화된다. 여야는 이 같은 내용의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켜 ‘의사가 지도하고 위임하면 진료 지원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PA간호사 의료 행위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구체적인 업무 범위와 조건, 한계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서민금융 출연 요율 하한선을 신설하는 내용의 서민금융지원법(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이날 처리됐다.
개정안에는 서민금융진흥원에 대한 은행의 출연 요율 하한선을 가계대출의 0.06%로 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까지는 금융사가 가계대출액의 최대 0.1%를 출연하도록 상한선만 규정했고 하한선은 따로 두지 않았다. 은행의 서민금융 출연금은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 재원으로 활용된다.
앞으로 중소기업들은 기술 유용이 의심될 때 법원에 이를 막아달라고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여야는 이 같은 내용의 ‘상생협력촉진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금까진 청구권이 따로 규정돼 있지 않아 기술 유용 행위가 발생해도 법원의 손해배상 판결 등이 있기 전까진 구제 요청을 할 수 없었다.
또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특례기간도 연장된다. 이날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됨에 따라 특례기간은 올해 9월 20일에서 2026년 12월 31일까지로 늘어났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은 낮은 사업성으로 일반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도심 내 노후·저층·역세권 등을 공공이 주도해 개발하는 사업이다. 한시법으로 추진돼 곧 일몰될 예정이었지만 안정적 사업추진을 위해 기간 연장이 필요하단 지적이 제기돼왔다.
이외에도 산업단지 입주기업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및 이용 촉진을 위한 ‘산업집적활성화법’(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처리됐다.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급과 시설 개선·확충을 지원하는 게 주요 골자다.
이날 여야는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주요 쟁점 법안(방송4법·노란봉투법·민생회복지원금법 등) 6건은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대신 다음 달 26일 본회의를 다시 열어 이들 법안을 재표결에 부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