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밸류업이 멀다면, IR는 가까워요

입력 2024-08-29 12:58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한국에서 IR를 열심히 하는 기업은 둘 중 하나에요. 정말 올바른 의지를 갖고 제대로 기업을 알리거나, 아니면 사짜(사기꾼)거나.”

온 나라가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세재개편안을 추진 중이며, 기업들은 주가순자산비율(PBR),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각종 기업 재무지표들을 분석하고, 배당·자사주 등 주주가치 제고책도 쏟아낸다.

아직 수익성을 내지 못하는 일부 기업들은 주주 환원할 잉여 자본이 없어 밸류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렵다고 토로하지만, 이는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양적 숫자가 아닌 질적으로도 충분히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IR다.

IR(Investor Relations)는 말 그대로 상장사와 투자자 상호 간에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활동이다. 처음 IR 활동이 시작된 것은 기업과 투자자 사이에 존재하는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상장법인들은 기업설명회를 개최해 투자자들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제공해 공정한 기업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IR 참여도는 처참한 수준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172곳 가운데 올해 들어 IR를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은 곳이 45%(537곳)에 달한다. 개최한 635개 기업 중에서도 10회 이상인 기업은 14%(92곳)에 불과하다. 기업들이 단순히 ‘불통(不通)’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IR를 ‘면피용’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IR 일정 공고를 살펴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IR 장소를 적는 란에는 ‘여의도’라는 세 단어만 표기돼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서여의도인지, 동여의도인지, 동여의도라면 넓디넓은 동여의도 어디에서 개최되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장소에 여의도라고 적어둬도 그나마 제목에 ‘2024 KB 콘퍼런스’처럼 행사명을 써넣어두면 낫다. 행사명을 보고서라도 어떻게든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은 장소에는 ‘여의도’라고 해놓고, 제목에 ‘투자자 이해 증진 및 기업가치 제고’라는 알 수 없는 말만 적어둬 투자자들을 아리송하게 만든다. 이만하면 오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IR 소통에 열성적으로 나서는 일부 기업들이 존재하지만, 이 중에는 비정상적인 기업이 대다수다. 발포제 기업에서 이차전지 기업으로 급격히 전환해 아직 상업용 생산도 못 하고, 변변한 설비와 실적도 없던 금양의 주가가 지난해 20배 넘게 급등할 수 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이른바 ‘밧데리 아저씨’로 잘 알려진 박순혁 전 홍보 이사가 전면에 나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IR 활동을 펼친 덕이다.

2년 연속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며 거래소로부터 거래정지 및 상장폐지가 의결된 셀리버리도 마찬가지다. 주주총회장에 조대웅 대표이사가 적극적으로 등판하는 것은 물론 대표가 직접 단체대화방을 개설해 주주들과 소통을 이어나갔다. 개미(개인투자자)들은 대표이사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기업에 대한 기대감과 믿음을 키웠다. 문제는 이러한 소통이 모두 거짓이었고, 개미들은 이용만 당했다는 것이다.

주주들의 믿음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기업이 먼저 자사의 자금조달, 재무관리, 성장전략 등 경영내용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투자자들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주주들은 그대로 호응할 거다. 지금처럼 IR 활동에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 IR 활동은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하나인 IR 문화만으로는 기업 가치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기업들의 IR를 향한 진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