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CJ올리브영(올리브영) 입지가 정말 대단해. 외국 바이어들의 ‘K뷰티 브랜드’ 선별 기준이 바로 올리브영이라니깐. 올리브영에 납품하면 무조건 OK, 아니면 NO야.”
화장품업계 마케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대학 동창이 최근 모임에서 이렇게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올리브영 찬가’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올리브영 덕분에 한국에서 별로 유명하지 않던 소위 ‘인디 브랜드’가 되레 해외에서 귀하신 몸이 된 사례가 적잖다고 했다. 최근에 유럽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후배도 이탈리아 로마 백화점에 떡하니 ‘K뷰티 브랜드관’을 발견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로마 백화점에도 우리가 알만한 대기업 화장품이 아닌 올리브영에서 단독 기획상품으로 자주 접했던 인디 브랜드 제품이 즐비했다는 후문이다.
올리브영이 이처럼 K뷰티 대표 유통 플랫폼으로 자리 잡자, ‘제2의 올리브영’을 꿈꾸는 이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이미 오프라인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전쟁에서 완전히 침몰한 ‘롭스’(롯데쇼핑)와 ‘랄라블라’(GS리테일)의 전사를 기억하는 탓일까. 이제 그 전쟁의 불길이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옮겨 붙은 모양새다. 국내 대표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식품 새벽배송 플랫폼 ‘컬리’가 바로 그들이다.
2022년 문을 연 뷰티 플랫폼 ‘뷰티컬리’는 조용한 확장을 꾀하지만, 지난해 12월 닻을 올린 ‘무신사 뷰티’의 공세가 무섭다. 무신사 뷰티는 특히 참가 브랜드 확보가 생명인 오프라인 ‘뷰티 페스타’ 행사를 이달 6일부터 8일까지 MZ세대의 성지, 성수동에서 대규모로 진행해 성황리에 마쳤다. 사흘간 방문자 수는 1만8000명이었고, 참여한 41개 브랜드의 평균 거래액도 전년보다 7.2배 상승했다. 이에 질세라 ‘뷰티컬리’도 내달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첫 오프라인 뷰티 페스타를 열고 90여 개 브랜드와 함께할 계획이다.
무신사, 컬리 등이 잇달아 온라인 밖에서 대규모 뷰티 행사를 여는 것은 내수 침체 상황에서도 유독 K뷰티 제품의 성장세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몰 럭셔리’와 ‘남다른 가치 소비’를 추구하는 MZ세대들이 뷰티 상품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데다,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로 한국 뷰티 브랜드에 대한 외국인 관심도 뜨거운 영향이 한몫한다.
이미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한 상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수출 실적은 총 85억 달러로 뷰티 강국인 프랑스(1위), 영국, 독일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단 1년 만에 수출 성장세로 돌아섰고, 무역수지 70억 달러 고지를 회복한 것이다. 또한 아시아, 북미, 유럽 등 수출 다변화에 따른 중국 의존도도 줄었다.
특히 1000억 원 이상 생산기업 12곳으로 증가했다. 여기다 화장품 제조사(4567곳)·책임판매업체(3만1524곳)·맞춤형 화장품판매업체(231곳) 등 영업자도 늘었고, 기능성화장품 생산 5조 원 돌파 등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 올해 들어서도 K뷰티는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성장세다. 업계는 올해 93억 달러 이상 수출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K뷰티가 어느새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산업이 된 것이다.
그런데 K뷰티 산업이 급속히 커지자, 유통채널 사업자 간 경쟁도 과열되는 모습이다. 최근 올리브영이 무신사 뷰티 페스타를 앞두고 입점업체에게 불참을 강요하는 등 이른바 ‘갑질’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와 관련 공정위는 10일 올리브영 본사를 전격 현장 조사했다. 무신사도 마찬가지다. 시장 지배력이 큰 패션 브랜드에 대해 타 플랫폼 입점을 제한하거나 가격과 재고관리를 자사에만 유리하게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공정위 현장 조사를 받았다. 일각에선 양사가 서로 갑질 제보를 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그야말로 서로 물고 물리는 형국이다.
이는 마치 2015년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증가로 불붙었던 시내면세점업체 간 경쟁을 연상케 한다. 계속 호황을 기대한 터라 특허권 획득을 놓고 서로를 향한 비방전이 난무했다. 결국 중국의 사드 보복과 팬데믹을 거치며 시내면세점은 이제 처치 곤란한 지경이 됐다. 이를 거울삼아, K뷰티 관련 기업들이 서로 상처를 내며 자멸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욕심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스스로 가른 기업들이 금세 ‘을’이 되는 것을 그동안 수없이 봐온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