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과 인플레보다 부동산 시장 버블이 문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9일 "최근 금융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상당히 크다"며 "수도권 일부이기는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경계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정기 회의를 개최하고 7월 기준금리를 연 2%로 다섯달 연속 동결한 이후 통화정책 운용 방안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성태 총재는 "지난 2~3개월 동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주택 매매가격이나 전세 가격이 다소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최근 빠르게 상승중인 주택담보대출과 연결지어 볼 때 경계를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부동산 시장에 몰리는 투기적인 시중 유동성 유입에 대해 경계 발언을 사실상 내놓은 셈이다.
최근 유동성 증가 속도가 다소 둔화되는 과정에서 은행들의 관심이 모기지대출로 모이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성태 총재가 시장이 예상한 대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보다 부동산 투기에 우려를 표시한 것.
이 총재는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가격 거품이 있는 것 아닌가를 걱정하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현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더 올라갈 경우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또한 "주택담보대출이 많이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주택구매와 관련된 자금도 있을 것이고, 일부는 이와 관련되지 않은 자금도 있겠지만 정책 당국으로서는 경계심을 갖고 대응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성태 총재의 이같은 발언을 종합해보면 시중 은행이 지속적으로 주택담보대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인플레이션과 유동성 증가세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투기재현에 대한 경계심을 안고 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형태서베이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은행의 대출 태도는 오는 3분기에도 지속적인 완화가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가계주택대출도 포함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계주택관련 대출에 대한 수요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흐름은 가계 입장에서 보면 낮은 금리 수준과 주택가격 상승 기대에 기인하고 은행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이 우월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시중 자금이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 특히 부동산 시장과 같은 거시 경제의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고자 국내 금융시장 참가자들에게 보낸 메시지로 해석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
한편, 이성태 총재의 물가와 유동성에 대한 시각은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이 총재는 "물가는 그동안의 상승세가 한 풀 꺾인 모습"이라며 "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에 비해 2%대로 떨어졌고 이는 여전히 민간 부문의 경제 활동 회복세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총재는 "수요측 물가 압력이 낮은 상황이고 그간 원유 가격 흐름도 지난해보다 낮아진 수준이지만 지난해 물가 움직임과 연결지어 본다면 7월까지는 모르겠으나 8월 이후에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더 내려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는 수요 압력이 제약되면서 당분간 오름세 둔화 추세를 지속하겠으나 유가 상승으로 비용 측면에서의 상승 압력은 점증할 것이라는 시각을 내비친 셈이다.
이 총재는 "따라서 물가는 향후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반적인 물가안정 흐름은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며 "물가는 올 하반기 이후 내년까지 안정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물경기 침체를 위해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에 대한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지난 한 달간 큰 변화는 없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광의 유동성 지표의 증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반면 좁은 의미의 협의통화 증가율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며 "저금리 기조의 현 상황에서 이는 어느정도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특정 부문의 상품이나 자산에 흘러가 경제를 교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인지 여부를 관심있게 지켜보면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그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의 증가,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 상승, 이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대응 등이 유동성 전체의 큰 흐름과 관련이 있는 만큼 근본적인 추세가 변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이와 관련, 국고채 만기상환을 위한 정부의 자금과 기업들의 반기말 재무제표 관리를 위한 자금이 MMF로부터 빠져 나가면서 협의의 유동성 증가율이 앞으로도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이같은 판단의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성태 총재는 익일로 예정된 한은의 하반기 경제전망 발표와 관련해 지난 4월에 발표한 수준보다는 나은 숫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총재는 "지난 2분기 각종 산업생산 지표나 수출 실적 등 여러 지표들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은 모습"이라며 "단지 하반기에도 이를 이어갈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지만 2분기 자체는 매우 좋았기 때문에 연간 전체로도 지난 4월에 발표한 것 보다는 좀 나은 숫자가 나올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 밖에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하 논란과 소비진작에 대한 효과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서는 감세정책의 경우 시행 시점과 그 강도가 중요하고 재정건전선 회복정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이 총재는 "세제 문제는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폭넓게 연결돼 있는 만큼, 낮추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감세정책이 현 시점에서 어떠냐는 것을 평가하기보다 현 상황이 얼마나 시급하냐 정도의 판단이 중요하다"며 "일률적으로 감세정책이 옳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내리기보다 시행 시점과 강도에 향후 정책의 효과가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취한 재정수지 영향을 미치는 여러 정책들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고 당시에는 필요했던 정책"이라면서도 "이같은 정책을 향후 그대로 끌고 나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정수지에 대한 중장기전망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적절한 시기에 재정건전성을 회복하는 정책은 필요하다"며 "다만 어느 시점에 얼마나 크게 하느냐는 재정전문가들이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