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장의 한계, 글로벌 수익 확대와 새로운 수익 창출 기회. 그리고 ‘해외 시장 진출’. 금융사 수장들이 공통적으로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키워드다.
어떻게 보면 매년 반복되는 주문인데 올해는 뭐가 변했나 싶다. 5년, 1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봐도 최고경영자(CEO)들은 매년 어렵고, 불확실한 환경을 이유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20년째 해외진출을 목표로 했던 금융사들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선 국내 은행의 해외 실적은 뒷걸음쳤다.
실제 올해 상반기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해외 순이익은 3379억 원으로 전년 대비 38%가량 줄었다. 해외 점포 수도 지난해 말 기준 202개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257개)보다 되레 줄었다.
금융사의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도 근근이 먹고살다 보니 초기 투자비용과 리스크가 따르는 해외진출은 섣불리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여력이 부족한 중·소형 금융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기자와 만난 중·소형 카드사 임원은 해외진출 계획에 대해 “그럴 여력이 있겠냐”며 “국내에서도 영업이 안 되는데 해외진출에 투자할 돈이 어딨겠냐”고 반문했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 CEO 입장에서 해외 진출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수긍이 가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생사를 걸어야 할 시점이다. 해외 진출 실패보다 미래 먹거리 감소가 더 큰 문제다. 인구증가세가 하락하고,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수요는 곧 한계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독려하고 있어 앞으로 이들의 글로벌 영토 확장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금융당국은 해외 자회사 소유에 대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금융사들의 투자유치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이끌어갈 CEO의 일관성 있는 정책도 필수다. 단기적으로 적자를 부담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어느 시점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이후 수익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계획이 수립돼 있어야 한다.
20년간 ‘금융업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못했던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지금까진 뚜렷한 비전 없이 ‘깃발 꽂기’ 식의 해외 진출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한 번쯤 뒤를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