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한지 한 달을 넘어선 가운데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관점에서는 기업의 재무안정성과 자사주 관행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려아연의 자본을 효율화할 수 있는 쪽이, 주주 입장에서는 보다 우수한 세금·주주환원 계획을 발표하는 쪽이 승리하는 편이 낫다는 전망이다.
11일 신한투자증권은 "MBK가 공개매수가 추가 인상을 멈추면서 매수가 입찰 경쟁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이고, 이제 투자자 결정과 더불어 법적 분쟁 절차 정도가 남아있다. 결과의 예측보다는 주주가치의 제고나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자사주 관련 쟁점 등을 살펴본 결과 경영권 분쟁에서 밸류업 쟁점에 주목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한 달간 영풍 그룹 내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고려아연 주가는 55만 원에서 최고 79만 원,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영풍정밀은 9000원에서 최고 3만6000원으로 크게 올랐다. 경쟁적 공개매수 과정에서 기업 재무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기업의 채무 불확실성과 비용 지출은 향후 성장에도 큰 부담이 된다.
MBK는 공개매수에 약 2조 원을 차입하면서 연 1100억 원 수준의 이자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며, 고려아연 측은 2조7000억 원 자금을 소요해 자사주 공개매수·소각을 할 경우 부채비율이 크게 오르는 등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수 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누가 승리하든지 기존 주주들이 재무부담을 떠안게 된다. 한편 지배구조 관련 불확실성에 노출되면서 신사업에 대한 시설설비(CapEx) 투자 등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어 이를 반영해 한국기업평가에서도 분쟁에 따라 신용도에 '부정적' 전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자사주 관행 또한 밸류업에 제약 요인이다.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연의 목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주장했고, 고려아연은 지난 2일 밸류업 공시를 통해 매입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혔다.
강 연구원은 이에 대해 "다만 차입을 통한 주주환원이라는 점에서 주주의 의구심을 일으킬 수 있고, 구체적 소각 일정을 밝히지 않은 만큼 우호 주주에의 처분(교환)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된다면 주주가치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자본 효율성을 낮추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금융위원회는 올해 자사주 관련해 몇몇 제도개선을 실시했지만 여전히 맹점은 존재한다. 미국·영국·일본 등에서는 자사주에 대한 아무런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유상증자(신주 발행)가 금지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발휘하는 경영권 방어 목적 자사주 처분에 대한 제약은 아직 부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밸류업 관점에서는 궁극적으로 고려아연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쪽이 승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주주 입장에서는 양측에서 밝힌 주주환원 방안의 비교를 통해 판단할 것"이라며 MBK의 공개매수가 상향 종료 공표가 장내 매도를 염두에 둔 주주에게는 매도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