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억제책에 주담대 등 대출금리와 괴리
3년여 만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p) 낮추면서 긴축에서 완화로 통화정책 전환(피벗)이 이뤄졌지만 기나긴 내수부진 터널을 당장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금리인 데다 대출금리는 급증하는 가계대출을 꺾으려는 금융당국 압박으로 당분간 통화 긴축 기조를 역행할 공산이 커 피벗 효과 체감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14일 한은 등에 따르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1일 기준금리를 0.25%p 내린 3.25%로 확정하며 3년 2개월 만에 긴축 기조를 마무리했다. 주요 내수 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올해 2분기 -2.9%)가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전년동월대비 감소했고, 공사 실적을 금액으로 환산한 건설기성도 5월(-4.6%)부터 8월까지 4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는 등 내수가 전반적으로 침체해 있어서다.
이번 금리 인하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등의 고금리 이자 부담이 줄고 대출 여력도 늘어 한동안 부진했던 내수가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은행 빚을 진 국민이 통화 완화 정책 효과를 체감하려면 대출금리 등도 같이 내려가야 하는데,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와 맞물려 당장 하향 조정이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피벗 당일인 11일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연 3.990~5.780% 수준으로 약 3달 전인 7월 중순보다 하단이 1%포인트(p) 이상 튀었다. 같은 기간 은행채 5년물 금리가 떨어진 것 등을 고려하면 은행 대출금리가 시장금리와 반대로 간 것이다.
앞서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폭 둔화를 위해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실제 대출금리에 가산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정하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를 지난달부터 적용하고 은행권도 대출요건을 강화한 영향 등으로 풀이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소비 여력은 일단 고금리 이자 부담이 줄어야 생기는데 이자는 대개 주담대에 몰려 있다"며 "금리를 내려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하기까지 3~6개월 걸리고, 스트레스DSR로 대출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이니 시장금리와 괴리가 생겨 소비에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담대 금리가 얼마나 내려가느냐에 따라 내수에 긍정적인 영향이 파급된다"며 "내수와 밀접한 건설경기도 이 정도 금리 인하만으로는 부양하기 어렵다. (추가 금리 인하로) 2.75%~3.0% 수준의 중금리로 가면서 어느 정도 재정을 풀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집값·가계부채 증가 우려 탓에 이창용 한은 총재를 비롯한 금통위원 대다수는 연내 추가 금리 인하에 신중론을 펴고 있지만 길어지는 내수 부진과 9월 기준 전년동월대비 1%대 안정세에 접어든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은 추가 금리 인하가 가능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물가가 상당히 안정됐고 세계적 수준의 가계부채와 고금리가 내수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통화 완화 기조로 전환한 미국 금리와의 연계성 등을 고려해 우리나라가 금리를 추가로 낮출 여지는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