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영 부회장…"테크기업으로 업의 전환"
2015년 '디지털 현대카드' 선언 이후 10여년 만의 성과
“지금까지 인공지능(AI)에만 1조 원을 들였다. 예전에는 어떻게 인재를 데려올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우리 직원을 뺏길까 걱정이다. 앞으로는 5년짜리 비전보다 중장기적으로 가려고 한다. 시장점유율이라든지 손익은 그에 비해 중요치 않다. 제가 대가를 치룬 건 포지셔닝이다. 우린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올해 5월 서울 강남구 현대카드 쿠킹라이브러리에서 기자들과 만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발언이다. 정 부회장이 그린 자사의 미래의 중심에는 AI가 있었다.
2015년 정 부회장은 ‘디지털 현대카드’를 선언했다. 당시 정 부회장은 영업이익의 30%에 달하는 예산을 AI에 올인하기로 결정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본 투자였지만 카드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30%라는 비율은 모험으로 여겨졌다. 그럴수록 정 부회장은 더욱 과감히 밀어붙였다.
특히 인재 채용에 공을 들였다. 투자를 한 만큼 실력을 갖춘 엔지니어들이 대거 현대카드에 자리를 잡았다. 연간 100여 명에 달하는 데이터 사이언스 전문 인력이 채용됐고 조직은 강화됐다. 현대카드가 '디지털컴퍼니'로 변화해가는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4년, 정 부회장의 승부수는 제대로 통했다. 현대카드가 국내 금융권 최초로 독자 개발한 AI 소프트웨어 수출에 성공했다. 계약 규모는 수백억 원에 달하며,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소프트웨어 수출이다.
17일 현대카드는 일본 3대 신용카드사인 SMCC에 AI 소프트웨어 ‘유니버스’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전일 일본 도쿄 SMCC 사옥에서 열린 조인식에는 정 부회장과 오니시 유키히코 SMCC 사장이 참석했다.
유니버스는 현대카드가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고객 초개인화 AI 플랫폼이다. 데이터를 정의하고 구조화하는 ‘태그(Tag)’로 개인의 행동·성향·상태 등을 예측해 고객을 직접 타기팅(Targeting)할 수 있고, 업종에 상관없이 비즈니스의 전 영역에 적용 가능하다.
SMCC는 이를 도입해 회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경험 가치를 높이고, 가맹점 판촉 고도화를 진행하는 한편 여신 업무, 고객 상담, 부정사용 감지 등 영역에서도 활용할 계획이다.
SMCC는 유니버스 도입으로 회원 개개인의 취향, 결제 패턴, 라이프 스타일 등에 최적화된 경험 가치를 높이고, AI와 데이터 사이언스에 기반한 세밀한 타게팅을 통한 가맹점 판촉 고도화를 진행하는 한편 여신 업무, 고객 상담, 부정사용 감지 등 전사적인 영역에 ‘유니버스’의 AI를 도입해 나갈 계획이다.
SMCC는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현대카드와 기술 실증(PoC·Proof of Concept)을 진행했다. 철저한 검증 끝에 유니버스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도입을 결정했다.
현재 SMCC가 속한 일본 SMFG(Sumitomo Mitsui Financial Group) 산하 타 계열사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금융사들도 유니버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번 수출이 국내 금융사 중 첫 번째 ‘업의 전환’ 사례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금융사들이 진행해 온 전통 금융사업 및 금융 시스템 등을 통한 해외 진출이 아닌 테크 기반의 해외 진출이라는 점 및 전통 금융사에서 테크기업으로의 업의 전환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SMCC 관계자는 “철저한 검증 과정을 통해 현대카드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분석 및 설계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도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일본을 시작으로 북미·유럽·중동·아시아 등 각국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협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확장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