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최근 수년간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제재를 강화하자 반도체 장비ㆍ부품ㆍ재료 등의 주요 공급 국가인 일본ㆍ네덜란드가 올해 이에 합류한 것과 달리 대만은 의아할 정도로 모호한 입장임에 따라 긴장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가 최근 짚었다.
특히 중국이 대만에 군사적ㆍ정치적 압력을 강화하며 영유권을 공격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대만은 계속해서 중국이 군사력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반도체를 지속 수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그 주요 배경에 대해 대만의 반도체 수출이 ‘경제적 이익’과 ‘국가 안보’가 충돌하는 딜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디플로매트는 분석했다.
또한 대만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이 ‘파우스트적 비극(돈ㆍ성공ㆍ권력을 바라고 옳지 못한 일을 하기로 동의하는 것)’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있는 대만은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협조가 필수적이다. 즉 미국이 줄타기를 하는 듯한 대만의 태도를 오래 묵과할 가능성은 낮다.
더군다나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 대만이 수출한 첨단 반도체는 미사일 유도 시스템을 비롯한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해 대만의 안보에 부정적이다.
이에 대만은 국가 안보와 외교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적극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럼에도 대만은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지속하고 있다. 대만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수출 총액의 38.5%에 해당하는 1666억 달러가 반도체 부문에서 발생했다. 또한 반도체 수출액 가운데 54.2%(904억 달러)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경제적 이익만을 고려했을 때는 대만이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중단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디플로매트는 “대만은 중국과 맺은 정치ㆍ경제적 관계로 국가안보와 경제적 이득이 충돌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대만이 첨단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해 중국이 군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하는 아이러니와 불가피성은 역사적 배경과 연관이 있다.
대만 기업들은 중국이 1978년 경제를 세계에 개방하자 중국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했다. 전자ㆍ섬유ㆍ기계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중국의 산업 발전에 박차를 가했다. 이에 대만 기업들은 막대한 생산 비용 절감과 인구 13억 명이 넘는 급성장 시장에 대한 우선 접근권을 누리며 글로벌 경쟁력을 쌓아왔다.
디플로매트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파우스트의 거래는 계속되고 있다”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최고의 첨단 칩 생산국인 대만은 여전히 중국 산업에 반도체 등 필수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대만의 경제 성장에 필수적이지만, 중국의 군사력을 강화해 대만의 안보를 위협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대중국 반도체 수출 중단은 대만 경제를 글로벌 수준으로 견인한 핵심 기업인 TSMC 등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해외 역량과 함께 국내 혁신도 잠재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
또한 대만이 중국에 반도체 수출을 중단해 국가 안보에 더 방점을 둔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챙기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중국 고객들은 수출 규제를 시행하지 않는 다른 국가에서 대체 공급업체를 찾을 것이고, 이는 중국 반도체 업계가 이루려는 ‘탈미국화’와 함께 ‘탈대만화’도 촉발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적으로 개입할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모호한 태도를 견지하는 ‘전략적 모호성’ 정책도 대만을 더욱 곤란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중국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익을 상당 부분 희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만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내달 5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선거 후에는 대만의 모호한 입장을 계속 가져가기는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디플로매트는 “대만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제 중국과의 중요한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국의 지침에 긴밀하게 보조를 맞춰야 할지에 대한 어려운 결정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