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의 면담 후폭풍이 나흘이 되도록 가라앉지 않고 있다. 면담 이후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은 감정싸움으로 번졌고, 후폭풍이 친윤(친윤석열)과 친한(친한동훈) 간 계파 갈등에 기름을 부으면서 '심리적 분당' 이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지난 21일. 용산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81분간의 면담이 끝난 뒤 한 대표는 면담 직후 브리핑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귀가했다. 국회 브리핑은 박정하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이 맡았다. 당시 박 실장은 한 대표가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3대 요구(대외활동 중단·대통령실 인정쇄신·의혹규명 협조) 등 여러 의제를 꺼냈다고 알리면서도 윤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입을 닫았다. 당시 박 실장은 "대통령 말씀을 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통령실에 취재하라"며 면담 관련 언급을 아꼈다.
그러나 대통령실과 친한계는 이튿날부터 언쟁을 벌이며 서로 간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SBS 라디오에서 면담 주체인 한 대표가 배석자인 정 실장과 나란히 앉은 것을 두고 "비서실장과 대표를 앞에 앉혀 놓고 훈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권력관계의 위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을 30분 가까이 기다리게 했다는 의전 불만도 제기됐다.
대통령실도 입을 열었다. 3대 요구에 대해 "이미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인적 쇄신은) 내가 해야 하는 일" 이라며 소상히 입장을 밝혔다며 전했다. 특히 대통령실은 한 대표가 친한계 만찬 모임에서 "용산은 지금 말을 각색할 때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데 대해 "어떤 부분이 왜곡이냐"며 "엄중한 정치 상황에서 당정이 하나 돼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시기"라고 받아쳤다.
면담 뒤 친한과 친윤도 곳곳에서 충돌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김 여사 문제의 해소를 위해 한 대표가 제시했던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가 여당 계파 갈등의 최대 뇌관으로 부각했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공직자를 감찰하는 독립 기구다. 국회가 법조계 경력 15년 이상 변호사 중 3명을 추천하고, 이 중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면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대표가 특별감찰관 추천을 진행하려 하는 것을 두고 추경호 원내대표가 원내 사안이라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통령실은 의원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사실상 추 원내대표에게 무게를 실어줬다. 친윤계는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표는 다시 반박했다. "대선공약을 조건 달아 이행하지 말자는 우리 당 당론이 정해진 적 없다"고 했다. 또 "국민께 약속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기본값이다. 우리 당 대선공약 실천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국민께 공약 실천에 반대하는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조목조목 따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 대표가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별개로 특별감찰관을 추천하려는 데 대해 "당연히 당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거리를 두면서도 "당의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가 걸린 문제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특히 최근 국민의힘 의원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선 배현진 의원이 추 원내대표를 향해 "특별감찰관 추천에 대한 생각을 밝혀라"고 공개 요청하는 등 사실상 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리적 분당' 우려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선 국정감사 이후 열릴 것으로 보이는 의원총회에서 특별감찰관 임명 추진안이 '표 대결'로 이어지면 양측의 갈등은 심화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재원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에서 "대통령과의 독대가 끝난 다음 이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 건 처음 본다"며 "야당 대표와의 만남보다도 훨씬 나쁜 결과가 돼버렸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신뢰는 이제 거의 끝난 것 아닌가 그런 입장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렇게 될 거라면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느낌을 저뿐만 아니라 국민께도 보여준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