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경제학]일본 IT산업 교훈…“자만은 도태를 부른다”

입력 2011-01-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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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니가 1979년에 처음 출시한 워크맨 1호기.

최근 아이폰이 시판 3년 6개월 만에 1억대 판매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스마트시대가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아이폰의 등장이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약 20년전 인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워크맨(walkman)의 등장이었다. MP3 플레이어가 탄생하기 수년 전, 가장 놀라운 오디오의 혁신을 일으킨제품이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다.

워크맨은 실내음악을 바깥세상으로 끌어냈다. 가볍고 작은 디자인에 세계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허리춤에 워크맨을 차고 스테레오 헤드폰을 낀 채 조깅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뉴욕·파리·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에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당시 워크맨도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워크맨 시대’를 기억하는지= 지난해 10월, 31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아온 소니의 히트상품 워크맨이 판매 중지를 선언했다. 워크맨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전자업계에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일으켰다.

소니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가 개인적으로 음악을 즐기기 위해 시험 삼아 만든 것으로 지난 1979년 등장한 이후 지난해 3월까지 전 세계에서 2억2000만대가 팔렸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일제 가전제품 수입 금지에도 불구하고 널리 퍼졌다. 이후 삼성전자의 ‘마이마이’, LG전자의 ‘아하프리’, 대우전자의 ‘요요’ 등 국내 기업들도 미니카세트 제품을 선보였다.

3040세대로 1980년대에 감수성 예민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워크맨에 대한 자신 만의 기억과 느낌을 갖고 있을 정도다.

소니는 이후 시대의 흐름에 맞춰 콤팩트디스크(CD), 미니디스크(MD) 대응형 상품을 잇따라 출시했지만, 원조 워크맨 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1990년대 말 한국 기업이 개발한 MP3 원천기술로 미국 애플사가 아이팟을 내놓으면서 워크맨은 급속히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최근 일본 시장에서는 MP3 대응형 워크맨이 아이팟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전자제품 하면 일본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최근 일본은 삼성의 영업이익이 소니·파나소닉·히타치 등 일본 대형 전자업체 9곳의 영업이익을 합친 것보다 배가 넘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일본은 1980년대 중반 반도체 부문에서 1960년대 이후 세계반도체 기술을 선도해온 종주국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일본에 추월당한 미국 전자업계에는 감원과 파산 태풍이 몰아닥쳤다. 일본 반도체 업계는 미국을 추월한 뒤 한동안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기들끼리 생산량을 조정하고 상품 가격을 좌지우지했다.

◇‘갈라파고스’의 늪은 깊다= 앞선 기술력에 자만하던 일본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한국이나 대만 전자업계의 도전을 받은 것이다.

현재 일본의 IT업계는 갈라파고스화를 격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기술과 서비스가 일본 시장내의 경쟁으로 고도로 발전하는 사이 세계시장에서는 이와 차별화된 표준화된 기술과 서비스가 보급되면서 일본 기업들이 고립돼 버렸다.

본래 갈라파고스는 남아메리카에서 1000㎞ 떨어진 섬으로 대륙에서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진화한 고유의 종이 서식하고 있는 섬이다. 최근 일본은 후발주자로 생각했던 한국 기업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의 경영전략을 벤치마킹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경제산업성에 한국관련 산업·무역정책을 전담할 ‘한국실’을 설치하는 등 한국 기업의 성공요인을 분석하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는 데 이견은 없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기술격차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지만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는 여전하다. 2000년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우리나라 부품·소재산업의 대일 무역 누적적자는 1711억 달러로 같은 기간 전체 산업의 대일 무역적자 2441억 달러의 74%를 차지했다.

부품·소재의 일본 의존률은 2000년 이후 줄어들고 있으나 지난해만 해도 25.2%나 된다. 필요한 부품·소재 4개 중 1개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삼성·LG·하이닉스 등을 주요 거래선으로 확보한 일본의 전자 소재·부품 업체들이 큰 수혜를 누리고 있다.

IT 전문 조사회사 IDC(Japan)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 국내 IT시장은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2009년 큰 폭의 하락을 보였으나, 경기회복세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올해에는 성장속도가 다소 감소돼 지난해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일본 기업의 본격적인 안드로이드 폰 개발 및 신제품 출시를 계기로 스마트 폰 시장은 아이폰 중심에서 안드로이드 폰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때 일본 시장만 뚫으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까다로운 일본 시장의 수요는 IT산업의 기술력을 고도로 향상시키는 수련장을 제공했다. 일본 기업들 역시 뛰어난 기술력만 가지면 세계 어디서든 통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 시장과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시장과 세계시장과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 나가느냐가 일본 IT기업의 숙제로 남았다.

한국은 만성적인 기술무역수지 적자국이다. 지난해 적자규모는 50억 달러에 육박했다. 문제는 적자 규모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기업이 일본 기업을 조금 앞서고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될 대목이다. 기술발전의 속도로 업종별 각국의 독점적 우세 기간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일본 전자업계의 흥망성쇠를 우리가 어떤 교훈으로 받아 들이냐에 따라 우리 기업의 운명이 결정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11일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겉모양은 앞서는데 속에 부품은 아직 일본을 따라가려면 많은 시간 연구가 필요하다”며 일본을 더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문=한국인터넷흥원 민경식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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