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건설 침체로 불황…중국, 낙후산업 구조조정 박차
현재 시멘트업계 위기의 원인을 단순히 건설경기 침체와 경기사이클에서 찾기에는 그 불황의 골이 너무 깊고 광범위하다.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일본, 중국의 예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6~7년 전부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는 감산 목표치를 제시해 물량조절에 들어갔다.
◇ 일본, 구조조정과 M&A를 통한 재편
우리나라보다 10여년 앞서 건설경기 침체와 수급불균형을 겪은 일본 시멘트산업은 기업내 구조조정과 기업간 M&A로 침체를 극복하고 있다.
1987년부터 가동율이 65% 대에 머물렀던 일본 시멘트 업체들은 내부적으로 노후설비를 자발적으로 폐쇄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절감에 나섰고, 5년 만에 가동율을 90% 가까이 끌어올렸다.
이후 1994년 오사카(Osaka)시멘트와 스미토모(Sumimoto)시멘트가 합병 해 ‘스미토모 오사카(Suminomo Osaka)시멘트’로 규모를 키웠다. 한 차례 합병했던 치치부 온다 시멘트(Chichibu+Onda)는 1999년 니혼(Nihon)시멘트와 다시 합병하며 태평양시멘트로 재탄생했고, 시장점유율 40%를 기록하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합병을 통해 만들어진 대형 업체들은 유통기지마다 최저 가격을 설정한 후 가격이 싼 지역 순으로 판매가를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2000년 들어 일본의 건설 경기가 장기침체로 이어지고, 시멘트 출하량이 급격히 줄자 가동률이 50%에 머물던 삼정물산은 2005년 사업을 철수했다. 업계 선두인 태평양시멘트 마저 향춘 공장을 폐쇄하는 등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이어왔다. 아직도 전방산업 침체에 따른 수급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는 일본 시멘트업계는 원료용 폐기물 재활용 사업확대 등을 시도하며 비용구조 개선 및 산업 구조조정을 계속하고 있다.
◇ 중국, 급성장 이후 위기의식
중국도 범정부 차원에서 낙후산업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정리를 전방위로 진행하고 있다.
시멘트를 포함한 주요 과잉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높아지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직접 나서서 10대 전략산업 구조조정과 진흥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중국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원 총리는 “ 시멘트·철강·코크스·석탄산업 등에서 과잉생산을 억제하고 낙후된 설비 퇴출을 가속해야 한다” 며 2009년에 이어 또 다시 관련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라고 촉구했다.
중국 정부는 과잉 투자업종에 대해 업체 간 M&A나 민간투자 활성화 등으로 산업 구조조정에 나서는 한편 구체적인 감산 정책도 제시했다. 지난해 5월,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시멘트업계에 9155만 톤을 감산하라고 지시하는 등 18개 업종의 생산 감축 목표치를 제시했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기업에 인사상 불이익과 각종 인허가 취소 등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했다. 리이중(李毅中) 공업정보화부장은 “법적·행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낙후설비와 산업을 퇴출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올해부터 시작되는 중국 12차 5개년 계획기간에도 낙후산업 구조조정은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 ‘자율’이라며 나몰라라 하는 한국 정부
정부와 재계는 10년 전 시멘트를 비롯한 석유화학, 화학섬유 .면방. 철강. 전기로. 제지 등 7개 업종의 구조조정을 민간자율로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신국환 산업부장관과 7개 업종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통산업 경쟁력강화 점검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이다.
이를 토대로 시멘트업계 관계자들은 구조조정을 민간 자율에 맡긴다 하더라도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정책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해왔다. 실질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려면 세금감면, 노동시장 유연성, 수익구조 개선 등의 문제가 함께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는 이렇다할 뾰족한 해법 없이 방관함으로써 오늘날 시멘트업계의 고충을 키워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반면 구조조정 대상산업이던 제지산업과는 대조적이다.
박성규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제지업계도 공급과잉 수급구조로 수익성이 나빠지자 지난 2006년 이후 산업과 기업 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사업지위와 수익정 제고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연구원은 “제지산업이 시멘트산업과 유사한 대규모 장치산업이고, 재료비와 운송비 비중이 크며 공급과잉 수급구조였으나 산업구조 개편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시멘트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주장했다.
제지업은 대부분 업체가 설비축소와 비용구조 개선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려했고, 가장 먼저 공장 일부를 폐쇄하고 설비를 정리한 한솔제지가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며 수익성이 개선된 점에 주목했다.
또 워크아웃을 신청하거나 (흥원제지, 한창제지) 타기업에 피인수된 이엔페이퍼(한솔제지에 피합병)와 대한펄프(LG그룹계열 희성그룹 인수)의 사례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자율의 구조개선 노력과 M&A를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
박 연구원은 현대시멘트와 성신양회처럼 시멘트 이외의 사업 투자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성과가 미비한 투자와 가동률이 저조한 사업장의 매각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자산 매각과 차입금 감축까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썅용양회와 동양시멘트처럼 지난해 자산매각 등의 방법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차입금을 감축해 온 기업은 부실기업이나 한계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M&A를 고려해 수익성 제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한일시멘트와 아세아시멘트처럼 양호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가격정책을 감행하고 물량을 확대해 시장점유율 확대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회사들도 점차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비용구조를 개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문제 해결의 열쇠는 산업은행 or 지식경제부
건설경기가 좋아지기 만을 기다리는 데 지친 시멘트업계는 정부 차원의 관심과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은다. 그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이 산업은행과 지식경제부라는 주장이다.
2003년 이후 시멘트업계의 현금창출능력(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14배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산업은행의 자금이 투입돼 있다.
재무구조가 열악하고 실적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몇몇 기업들은 차입금이 정책자금의 성격인 데다 자산을 담보로 한 차환을 통해 생존할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는 차입금 규모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있지만 산업은행은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6000억원 규모의 차입금을 유지하고 있다. 성신, 한일, 현대도 적지 않은 규모의 차입금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회사들이 성과와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금융권이 시멘트사의 채권 관리를 통합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한기평의 박 연구원은 “계열사별로 나뉜 기업금융 1~5팀이 산업별로 통합한다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며 “금융권에 의한 산업 구조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워크아웃이나 채권 출자전환, 구조조정의 수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지식경제부의 적극적인 산업구조조정 의지도 시멘트업계의 고충을 덜어주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시멘트 업계 한 관계자는 “몇몇 기업은 구조조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자율에 맡기다간 든든한 지원군(계열사)의 덕을 보는 대형사만 남고, 업황 체질개선은 미뤄지기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차원에서 기업별로 함께 노후설비 일부를 각각 폐쇄하도록 유도하거나 세제 지원 같은 혜택으로 산업을 회생시켜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며 현재 상황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ㆍ그러나 시멘트산업 담당 부처인 지경부 철강화학과의 시멘트담당자는“수급불균형과 시장경쟁에 따라 기업 자율적인 조정을 생각하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에 대해 애로사항이 있다면 들을 수는 있지만 인위적 구조조정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