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걸음 걸었을까,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듬직한 사내 형상의 그림자가 나를 앞지르기 시작할 무렵, 나는 흠칫 놀라 뒤를 두어번 더 돌아보았고 바로 집 앞까지 그 사내의 그림자가 따라와 휴대폰을 움켜쥔 채 긴장되는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몇 번을 더 뒤돌아 보며 사내의 동태를 파악하던 순간, 잔뜩 겁에 질린 내 표정을 본 사내가 한 마디를 건냈다. “안녕하세요”라며 밝은 미소를 더해서 말이다. 그 사내는 얼마 전 이사온 듯한 윗집의‘이웃 사촌’이었다.
언제 이사를 왔는지도 알지 못했지만,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에게 실례를 범한 것 같아 머쓱한 미소를 담아 “안녕하세요”라고 맞 받아 인사했다. 그 말 뒤에는 ‘흉흉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젊은 처자의 안쓰러운 노력이라 생각해주세요’라는 말을 잔뜩 생략해서 말이다.
지난 달 개봉한 영화 ‘이웃사람’처럼, 언젠가부턴가 정을 나누던 ‘이웃사촌’은 알 수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가버리고, 곁에는 서로를 경계하는‘이웃사람’들만 남아있는 기분이 들만큼 주변에서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삭막함 속에서 소통을 찾고 따뜻한 인간애가 그리워 몸서리치면서도 정작 어느 누구에게도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해 또 다른 단절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 같은 단절의 연속이 새로운 잠재 범죄자를 매일같이 양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만, 쉽사리 불안감을 떨치고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 용기를 내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오늘 귀갓길에는 윗집의 사내와 같이 집 근처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 경계의 눈초리 대신 따뜻한 인사부터 먼저 건내볼까 한다. 나의 이웃, 당신의 이웃이 오늘도 안전하길 바라며, 그리고 우리의 작지만 따뜻한 인사를 통해 정감 있는‘이웃사촌’들이 되돌아오길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