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대공습] 원고엔저 가속… 우리 수출기업이 위험하다

입력 2013-01-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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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방어 못하면 일본 '잃어버린 20년' 재판 우려

엔저를 통한 ‘강한 일본’ 부활을 기치로 내세운 ‘아베노믹스(경제정책 기조)’가 한국 기업을 겨냥하고 있어 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아베 일본 총리와 일본은행(B0J)은 물가목표 2%까지 무제한 돈 풀기로 환율전쟁을 촉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 출범할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의 엔저와 일본 기업들의 한국기업에 대한 반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칫 방어에 실패하면 한국경제는 수출부진으로 말미암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침체 속 물가 상승)에 빠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재판인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 정부의 재정지원과 엔저 무기 든 일본 제조업체=아베 정부는 무제한 양적 완화를 통한 엔저와 정부의 적극적 재정지원으로 한국기업에 의해 내몰린 전자와 조선산업,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제조 부문 재탈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산업은 엔고와 기술혁신 실패로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한국기업에 추월을 당하거나 위협받아왔다. 특히 1980년대부터 소니, 샤프, 파나소닉, 도시바 등 세계시장을 제패했던 일본 전자업체가 최근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빼앗기면서 선두 탈환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엔고로 수익성 개선을 겪었던 자동차, 철강, 기계 등 한국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되는 이들 일본 제조업체들도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계사왜란’(癸巳倭亂)으로까지 불릴 만한 아베 정권의 엔저를 무기로 한 한국 산업 공략이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아베노믹스가 부각되면서 엔화 가치 하락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뉴욕외환시장에서 지난 18일 엔·달러 환율은 지난 2010년 6월 이후 최저치를 나타내며 90 엔을 돌파했다. 이후 숨고르기 양상을 보이며 22일(현지시각) 엔·달러 환율은 88.72 엔에 거래되면서 여전히 90 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11일 2011년 8월 이후 처음으로 1050원대로 떨어진 이후 숨고르기 장세를 보이다가 10일만에 다시 1060원대로 진입했다. 문제는 올해 1차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긴 1060원선이 지난 11일 너무도 쉽게 붕괴하자 전문가들은 최후의 방어선인 1000원선까지 밀릴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김효진 동부증권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3.8%인 20조 엔 규모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와 전력문제, 정치적 안정성 등으로 일본의 경기회복은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경기부양책 시행과 더불어 환율 약세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정책들과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원고(高)·엔저(低)’속도 너무 빨라=문제는 올 연초 이후 일본 엔·달러 환율 상승속도가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보다 3배 이상 빠른 데다 한국 정부가 1050원선을 지킬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데 있다. 결국 ‘원고 엔저’ 현상이 지속하면 자동차, 철강, 조선, 기계, 전자부품업체 등 수출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특히 수출부진으로 경기침체와 실업률과 물가가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일본처럼 장기 경기침체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전문가 견해도 나오고 있다.

또 그동안 일본의 저금리를 이용해 국내 자산에 투자했던 ‘와타나베 부인(엔 캐리 트레이드)’이 다시 국내 금융시장에 귀환할 가능성도 크다. 와타나베 부인의 귀환은 단기적으로 국내 금융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엔저 정책을 이용해 환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자금이 들어와 국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국인 투기자본의 ‘국제 현금지급기’로 불리는 국내 증시를 표적 삼아 증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신기술 개발과 1000원선 방어할 환율정책 나와야=현재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중소 부품업체와 소재 업체는 지난해 말부터 박차를 가한 아베 정권의 환율전쟁으로 이미 일본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회복하고 있어 거의 괴멸상태에 놓여 있다. 그동안 가격 경쟁력으로 버텼던 국내 부품·소재 중소기업들은 일본 기업과 경쟁이 되지 않는데다 환율을 방어할 수 없는 해외 현지 생산기지 마저 없어 적자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자동차, 철강, 기계 등 대기업들은 현재 큰 타격을 입고 있지만 이대로 ‘원고 엔저’ 현상이 지속해 원·달러 환율이 1000원선이 붕괴하면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한국경제의 뒤를 받치며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전자업체와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도 원화 가치 상승으로 영업이익 폭이 계속 줄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이라는 획기적인 신기술 개발과 이순신 같은 전문가, 정부의 슬기로운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환율 전쟁에서 쉽게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일본과 우리 산업구조가 유사한 점이 많아 엔화 약세와 원화 강세는 우리 산업 경쟁력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나빠지게 할 수 있다”며 “그동안 환율이 저평가됐던 만큼 최근 미국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개입에 경고하고 있어 직접적 개입은 힘들지만 올 연말까지 1000원선까지 방어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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