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 넘으면 이웃에 나눠줘… 동반위 이익공유제와 일맥상통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정운찬 전 동반성장위원장이 지난 2011년 도입을 추진했던 ‘이익공유제’가 이슈화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경영을 강제하려던 이익공유제는 이미 조선시대 경주 최부잣집이 먼저 도입하고 실천했다. 최부잣집은 당시 지주와 소작인 관계에서 목표초과이익분배제를 시행해 약 500년 가까운 부를 유지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이나 회사 경영진과 종업원 간의 상생경영을 통해 부를 유지한 것이다.
최부잣집 가훈 중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가 바로 목표초과이익분배제를 의미하는 말이다. 최부잣집이 만석꾼 부자로서 사회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대손인 정무공 최진립 장군의 손자인 최국선(1631~1682)부터다. 당시 그는 지주가 소작인에게 농지를 빌려주고 8할이나, 심지어 9할을 소작료로 거둬 가던 시절 파격적으로 5할만 받아갔다. 최국선이 처음부터 5할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느날 도적질을 일삼던 ‘명화적’의 침입을 받았는데, 도적 무리 속에서 소작농과 그 아들들, 종들이 포함돼 있던 것에 충격을 받고 소작료를 5할로 내렸다.
이후부터 최부잣집은 소작인과 5대5로 공평하게 나눴다. 또 최부잣집은 ‘만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에 따라 쌀 1만 가마 이상이 넘는 초과이익이 발생하면 일부는 소작료를 깎아주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했다. 쌀 2만 가마가 만석이기 때문에 5대5 배분에 따라 쌀 1만 가마에 한해 소작료로 거둬들였다.
만석이 넘으면 모두 소작인이나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에 주위 소작인들은 최부잣집에서 농사짓기를 희망할 뿐만 아니라 좋은 땅이 있으면 먼저 최부잣집에 소개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최부잣집 재산은 해마다 몇백석씩 불어나 만석꾼의 발판이 되었다. 최부잣집은 우리 사회에 ‘자신의 잇속만 챙기지 않고 이웃과 나눔을 시작하는 것이 부자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특히 최부잣집은 한해 목표를 무조건 만석을 기준으로 하지는 않았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오히려 소작료를 깎아줬다. 풍년이 들었을 때도 만석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소작료를 감액해줬다. 최부잣집이 만석을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1년 동안 쌀을 보관하고 유통할 수 있는 양이 1만석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적정한 이윤만을 추구한 것이다.
최부잣집의 또 하나의 주요한 가훈은 수입에 맞춰서 지출하라는 뜻의‘양입위출(量入爲出)하라’다. 최부잣집 후손들은 만석의 범위에서 지출을 합리적으로 해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서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을 통해 꾸준히 부를 쌓아왔다. 최부잣집은 쌓은 부를 주위사람들에게 잘 베풀어서 인덕을 쌓으면서 지속 가능한 청부(淸富)를 추구했다.
이강식 경주대학교 교수는 “최부잣집은 부의 극대화보다는 오히려 부의 극대화를 절제해 사회구성원과 조화를 이뤘다”며 “부가 너무 집중되면 금력과 권력이 비대해져 교만해지고 동시에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견제가 들어오기 때문에 이를 청부경영으로 슬기롭게 헤쳐나갔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재벌이나 사회지도층이 정치인 뇌물제공, 회사자금 횡령, 탈세, 비자금 조성 등 부정부패 혐의를 받게 되면 가벼운 처벌을 받으려고 여론 무마용으로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부잣집이 전재산을 대학설립에 기부했던 것처럼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이자 세계 2위 부호인 빌 게이츠가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데 전재산 69조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점은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장기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경제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이같은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먼저 사회지도층이 사회통합과 서민층에게 희망을 주도록 최부잣집처럼 나눔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1998년 외환위기 시절 부자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금과 달러를 사들여 돈을 벌었다.
반면 서민들은 경제살리기를 위해 집에 있는 돌반지까지 가지고 들고 나와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쳐 위기를 극복했다. 현재 사회지도층이 서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 사회지도층이 외환위기 당시 서민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상황에 맞닿아 있다. 최부잣집이 약 500년 동안 몸소 실천한 초과이익분배제를 스스로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