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는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바이에른서만 9시즌을 뛴 ‘바이에른맨’으로 함부르크 감독 부임 이후 첫 뮌헨 나들이에서 참패를 당해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특히 바이에른은 주중 유벤투스 투린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 경기를 위해 프랑크 리베리, 마리오 만주키치, 토마스 뮐러 등 일부 주축 선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한 상태였다.
2-9. 7골차 패배는 함부르크 역사상 최다골차 타이 기록이다. 1966-67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원정경기에서 0-7로 패한 것이 역대 최다골차 기록이었고 무려 4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미 전반에만 5골을 허용했고 후반 15분도 채 지나기 전에 0-7까지 점수차가 벌어짐에 따라 핑크 감독은 경기를 포기하고 공격수 대신 수비수들을 기용했다. 더 이상의 망신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독일인들은 흔히 ‘슈메르츠그렌체(Schmerzgrenze)’에 다다랐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고통(Schmerz)’과 ‘한계(Grenze)’라는 명사를 조합한 단어다. 0-5로 뒤지는 상황에서 후반 8분과 9분 연달아 2골을 내주면서 한계점을 넘어선 상황에 다다르자 핑크 감독은 경기를 포기하고 공격수를 불러들였다. 후반 시작과 함께 순식간에 0-7까지 점수가 벌어지자 후반 12분 곧바로 손흥민을 불러들이고 미드필더 톨가리 아슬란을 투입한 것.
대개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면 상대팀도 더 이상의 적극적인 공격은 자제한다. 하지만 이날 함부르크의 수비력은 최악이었고 바이에른이 최대한 공격을 자제했음에도 함부르크는 2골을 더 허용해 총 9골을 내주고 말았다.
‘슈메르츠그렌체’를 넘어서는 경기는 비단 이 경기뿐만이 아니다. 지난 두 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 도르트문트조차 지난 1977-78시즌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게 0-12로 패한 바 있고 샬케04 또한 1966-67시즌 글라드바흐에게 0-11로 패했던 바 있다. 이 경우에도 똑같이 대패한 팀들은 적정선을 넘어서면 공격수들을 빼고 수비수들을 투입해 더 이상의 망신을 면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이기는 팀도 상대팀이 수비수들을 투입하면 공격을 최대한 자제하는 미덕(?)을 발휘하며 패자에 대한 예의를 지켜준다.
리그 경기에서만 이 같은 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대표팀은 2006년에 열린 산마리노와의 유로 2008 예선 원정경기에서 13-0으로 대승한 바 있다. 당시 독일은 경기 막판까지 12-0으로 앞서 있었고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어 이를 옌스 레만 골키퍼가 차려 했지만 산마리노 선수들의 부탁으로 다시 자신의 골문 쪽으로 돌아섰다. 독일은 당시 경기에서 공을 거의 만져보지 못한 골키퍼 레만에게 페널티킥 기회를 주려 했지만 곧 승자의 예의를 보여야 함을 깨닫고 필드플레이어에게 공을 넘겼다. 늦긴 했지만 승자의 예의를 지킨 것. 물론 산마리노는 독일과의 전력차가 워낙 컸던 탓에 독일이 최대한 느슨하게 공격을 했지만 당시 경기에서 소나기 골을 허용했다.
산마리노는 FIFA 가맹국 209개국 중 2013년 4월 현재 207위다. 부탄, 터크스카이코스제도 등과 더불어 공동 207위인 만큼 사실상 최하위다. 하지만 지난 1994 미국월드컵 예선 당시 종주국 잉글랜드를 상대로 지역 예선을 포함한 월드컵 최단시간 골을 터뜨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산마리노의 아마추어 선수였던 다비데 구알티에리는 경기 시작 단 7초만에 득점을 올렸다. 결과는 잉글랜드의 7-1 대승이었지만 산마리노 축구가 그만큼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 또는 대승을 거두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어떻게 이길 것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야구에서 경기 막판 크게 이기는 팀이 번트나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축구 역시 몇 골차로 벌어져야 느슨하게 공격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시점은 명문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크게 지는 팀이 추격을 포기한 채 공격수를 제외하고 미드필더나 수비수를 투입할 경우를 한계점으로 볼 수 있다. 대승을 거둔 팀이 대승을 거둘 자격 또한 갖췄는지를 알 수 있는 시점인 셈이다. 전쟁에서도 백기를 든 적을 전멸시키는 경우는 없는 것과 같은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