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 40일이 다되도록 불안해서일까! 현오석 경제팀 역시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작업이 대표적이다.
전액 빚으로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해놓고 국채를 언제, 얼마를 발행하겠다는 기본적인 내용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국채 발행에 따른 부작용을 만회하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할 방안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안할 지경이다.
한술 더 떠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한국판 재정절벽’을 합창하며 경제팀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과 국회에 추경의 절박함을 호소하려는 의도라도 신중함과 꼼꼼함을 소중한 덕목으로 삼아야 할 국민경제의 최종 방어자가 공개적으로 쓸 만한 표현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사실과도 거리가 있다. 재정절벽은 벤 버냉키 미국 연준 의장이 지난해 한 이코노미스트의 신조어를 인용해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세제 혜택이 종료되고 여기에 예산 자동삭감까지 겹치는 이단 옆차기에 미국 경제가 이듬해인 2013년 절벽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정치권이 타협점을 도출해 추락을 예방해달라는 압박이었다.
한국은 다르다. 추경이 없다고 미국처럼 재정 지출이 중단되지 않는다. 빚만 내겠다고 하니 미국과 달리 세금 문제와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한국판과 미국판은 정치적 의도만 같은 뿐 실제 내용은 딴판이다.
쓸 돈을 마련하려면 덜 쓰고 더 모으는 방법밖에 없다. 국채 발행은 돈을 더 모으는 가장 강력하고 신속한 수법이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고 국제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부담을 후대로 전가하는 약점을 안고 있다. 가능한 여러 정책과 적절히 조합해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대표적 세수 확대책은 기존 세금의 세율을 인상하거나 없던 세목을 신설하는 것이다. 국채 발행보다 험난한 방식이라 특근수당과 비슷하다. 그러나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과 정면 배치된다. 그래서 경제팀은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는다.
반면 증세이면서도 비과세 등 감면을 조정하거나 지하경제를 양성하는 이른바 세수기반 확충 방식은 권장되고 있다. 새정부는 이를 통해 53조원의 공약이행 비용을 마련할 계획이다. 목표 달성이 힘들더라고 적극 추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간접증세는 증세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흰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궤변과 같다.
씀씀이를 줄여 재정지출을 감축하는 것은 증세 없는 복지를 추진하는 명실상부한 방법이다. 지독하게 어렵지만 세출 구조조정으로 82조원을 장만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어보고 싶다.
추경 편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야당도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4월 임시국회를 순조롭게 통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추경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공약을 묵수하려는 경직된 자세와 끌어다 쓸 수 있는 정책조차 제대로 조합하는 못한 채 국채 발행만 제시하는 답답함이 추진동력을 훼손하고 있다.
경제관계장관회의가 15년 만에 부활했다. 지혜를 모으기 참 좋은 자리다. 현 부총리는 당장 다음주 수요일(10일) 열리는 첫 회의에서부터 추경 등 주요 현안을 조율해 유용한 정책 조합을 만들어 가야 한다.
마침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도 11일에 열린다. 추경으로 억만금을 푼다 한들 통화정책과 궁합을 맞추지 못하면 재정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더구나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이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경기 부양책을 가동 중이다.
경제팀이 금리 인하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무시하고 경제팀과 한은 사이에 교감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부는 기재부 차관이나 금융위 부위원장이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열석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 뒷담화보다 출석해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옳다. 이제 경제팀이 잘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