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남양유업 후폭풍 맞을라… 업계, 갑을관계 재정립 분주

올초 유통업계의 한 회사는 도매상들과 본사와의 신년하례식을 갖기 위해 영업본부장과 도매상 사장들이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만났다. 그런데 이 회사의 영업본부장이 도착하기 전 도매상 사장들 몇몇이 미리 와 앉아 있지 않자, 이 임원은 아래 직원에게 호통을 쳤다. 어째서 (자신이 오기 전) 도매상이 미리 와 있지 않냐며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화를 냈고, 도매상 사장들은 ‘을’의 설움을 또 한번 절감했다. 이같은 사실이 도매상들 사이에 퍼지자 이 임원은 함께 했던 사장들에게 전화를 돌려 사과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양유업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유통업계에서는 혹시나 자신들도 타깃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본사와 협력업체·대리점 간이 갑을 관계를 새로 정립하는데 힘쓰고 있다. 검찰, 남양유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전면 수사 방침을 밝힌데 이어, 공정위도 ‘밀어내기’ 관행 조사 착수해 업계에서는 불똥이 튈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유통업계에서는 ‘갑을(甲乙)’ 관계 재정립에 나섰다.

이마트는 최근 성수동 본사에 식품본부장과의 1대 1 협력업체 상담실을 열었다. 최성재 식품본부장(부사장)이 협력회사들과 직접 상담을 진행하는 것으로 매달 1일과 15일 식품본부의 모든 협력회사를 대상으로 사전 예약 없이 상담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협력업체가 인터넷 접수를 상담할 경우 일주일 이내에 답하기’, ‘기존 응답률을 50%에서 100%로 늘리기’ 등의 조항도 신설했다.이마트는 응답 성실도에 따라 본사 바이어들의 인사고과에 반영키로 했다.

최 부사장은 “협력업체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기 위해 이런 제도를 만들었다”며 “그들과 올바른 관계를 정립해야 이마트도 강해지는 거 아니냐”고 강조했다.

롯데마트는 협력업체와의 계약서류에 들어가는 ‘갑’과 ‘을’을 지칭하는 대상을 아예 바꿔버렸다. 자신들을 을로 하고 협력업체를 갑으로 표현했다. 또한 협력업체가 바이어와 상담 시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감안, 항상 5분 먼저 상담실에서 기다리자는 ‘5분 먼저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백화점에서는 판매사원 자살사건 이후 이들을 배려하는 움직임이 많다.

롯데백화점은 일부에서 운영했던 ‘판매사원 고충상담실’을 최근 ‘힐링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모든 점포에 설치했다.

현대백화점은 10일 부터 약 3500여개 협력사와 체결하는 모든 거래 계약서에 ‘갑’과 ’을’이란 명칭을 쓰지 않기로 했다. 통상, 거래 계약서상 ‘갑’과 ‘을’의 명칭은 계약당사자를 일컫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으면 ‘갑’, 없으면 ‘을’로 통용돼 원래의 의미가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백화점은 온라인상의 전자계약서, 오프라인 문서 계약서를 포함한 모든 계약서에 ‘갑’을 ‘백화점’으로 ‘을’을 ‘협력사’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또한 이 백화점은 매주 목요일 오후에 상품본부의 모든 바이어가 협력사를 직접 방문하는 ‘맨투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밀어내기도 주춤하는 모습이다. 주말 욕설 녹취록 공개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업체들의 밀어내기 관행이 거의 자취를 감추는 모습이다.

한 편의점주는 케익이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관련 상품에 대한 강제 발주가 올해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우유는 2006년 도입된 ‘5대 개혁’에 푸시(밀어내기) 종식을 명문화했다. 매일유업은 올해 초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대리점주들과 본사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고, 동서식품은 갑을 관계 형성이 무리한 매출 목표 설정에 있다고 보고, 매출 목표 설정 단계부터 대리점주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