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사회를 불편하게 하는 진실은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심지어 한때는 정당한(?) 경제행위로 생각했던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게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다. 일감 몰아주기가 불법이나 탈법은 아니다. 그러나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는 사회경제적 가치가 부상하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고 나온 경제민주화라는 게 대부분 그렇다. 의미의 모호함 등 여러 문제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건 경제민주화란 테마가 공론화될 시점이 됐다는 컨센서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CJ그룹도 마찬가지다. 회사와 이재현 회장에게 쏟아지는 각종 의혹은 언젠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이 회장 입장에선 억울한 부분도 있고 할 말도 많겠지만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투명하지 못했다는 건 불문가지다.
본사와 대리점 간의 갑-을 문제는 어떤가. 좀 과장되게 얘기하면 과거에는 이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본사는 갑이고 대리점은 을이었다. 갑은 갑의 논리로, 을은 을의 논리로 행동하고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이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난 것이다.
순간순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발전하는 게 역사다. 큰 흐름으로 봤을 땐 도도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것들이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갈등과 해소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 나간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갈등의 시기고 우리에겐 이를 해소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둑이 터지 듯 이곳저곳에서 표출된 갈등을 생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사회 참여자들이 삶에 대한 철학을 바꿔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게 돈과 지위가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일종의 천민자본주의적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식으로 표현하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은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이 소유욕을 가지고 있을 때 한없이 타락하고, 인간이 자신(존재)를 지향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고 강조했다.
즉문즉설로 잘 알려진 법륜 스님은 한 법회에서 “돈 많은 회장님들도 감옥 가는 일이 많지 않냐” 고 반문하고 “인생에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돈이 주인이 돼선 안 되며, 옷처럼 걸칠 뿐인 지위나 인기를 ‘나’ 로 착각해선 안 된다” 고 말했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얘기 같지만 서로가 비우고, 서로가 내려놓지 않으면 결코 발전은 없다. 많은 사람이 이재현 회장한테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그에게 손가락질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소득이 높아져도 꼭 행복으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1950년부터 1970년까지 일본의 국민소득은 일곱 배 증가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국민소득이 최하위권인 방글라데시와 비슷할 정도로 떨어졌다고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스털린의 역설’ 이다. ‘이스털린의 역설’이 말하는 건 행복감은 ‘빵(경제)’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됐지만 행복한 국민, 정확하게 표현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내가 속한 나라가 물질적인 강국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정신적인 변환점에 서 있다. 정신을, 철학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법의 잣대로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하고, 대기업 몇 곳을 손본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빵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흘러넘칠 때 이 사회는 진정으로 변할 수 있다.
이제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자. 기득권자, 가진 자, 갑 등이 먼저 여기에 앞장서야 한다. 존재하는 갑, 존재하는 재벌 회장, 존재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는 게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 조건이 충족될 때 2013년 겪고 있는 진통이 역사 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