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그림이 있는 골프]골프, 그 치명적 중독성

입력 2013-06-0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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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삽화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가 갖는 숙명적 중독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육체의 운동량으로 따지면 골프는 축구, 배구 같은 구기종목이나 마라톤이나 장거리달리기 같은 육상 종목과 비교되지 않는다. 쾌감 또한 사격, 야구, 승마 등에서 얻는 것보다 진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스포츠가 갖는 역동성, 열광성에 비하면 골프는 어떤 종목과 비교해도 밀린다. 마치 안 해도 그다지 아쉬울 것 없는 느슨한 취미활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프의 치명적 중독성은 바로 조금씩 모자란 듯한 것들의 절묘한 조합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육상이나 구기종목, 격투기, 등산처럼 많은 칼로리를 요구하는 운동도 아니면서 슛 스파이크 펀치처럼 강렬함도 약하다. 프로골퍼를 제외하곤 관중으로부터 주시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제각각의 스윙, 그다지 빠르지 않은 걷기, 충분히 짊어질 수 있는 골프백과 제각각의 장비,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경기규칙 등 얼핏 보면 골프는 이렇다 할 특색이나 역동성이 없는 스포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골프가 치명적 중독성으로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은 대결구도의 모호성, 땀과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결과의 의외성, 두 번 다시 같은 샷을 날릴 수 없는 일회성, 그리고 끝없는 탐험에도 불구하고 실체를 알았다고 큰소리 칠 수 없는 불가사의성 등이 아닐까 싶다.

스코어 경쟁을 벌이고 내기를 하지만 골프의 궁극적인 적은 나 자신임에도 상대를 적으로 몰아버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모든 조건들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기 십상인 것도 간단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환경과 느낌 때문이다.

어찌 보면 골프는 그 자체가 항상 새로운 것들과의 조우다. 그것도 계절, 날씨, 골프장, 골프장비, 파트너, 캐디 등이 엮어내는 수많은 조합과의 조우다. 그래서 한 번도 같은 느낌은 없다. 늘 신천지를 탐험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이유다.

조우 즉 만남은 접촉이다. 접촉은 어떤 형태로든 느낌을 준다. 스포츠의 궁극적 쾌감도 승패가 아닌 접촉의 느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작열하는 펀치로부터 전해지는 짜릿한 쾌감, 가벼운 터치의 상쾌함, 네트를 떠난 셔틀콕의 느낌, 발등을 떠난 공이 골네트를 가르는 모습을 보는 쾌감,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는 순간의 느낌 등은 성적인 쾌감과 마찬가지로 촉감, 혹은 촉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골프는 철저한 ‘촉감의 게임(haptic game)’이다. 골프는 손과 골프채, 볼 그리고 지면과의 접촉에서 쾌감을 얻는 스포츠다. 골프채가 아가위나무나 감나무에서 철, 티타늄 카본 같은 복합소재 등으로 발전하는 것도, 골프공의 소재가 끊임없이 개발되는 것도 보다 나은 촉감을 얻기 위함이다. 골프와 관련된 모든 공학은 결국 촉감과의 싸움인 셈이다.

그러나 골퍼들은 곧잘 잊는다. 완벽한 촉감은 도구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쏟는 사랑에 비례한다는 것을. 도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좋은 촉감을 창조해낸다. 부단한 연습, 손과 팔, 어깨 등이 골프채와 일체가 되어 움직일 때 최첨단 소재가 제공하는 기막힌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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