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론 내성적인 성격, 분열 자아 연기할 때 나도 모르는 감정 끓어 올라
엠뮤지컬아트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잭 더 리퍼’에는 사랑을 지키려고 광기를 택한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광기를 지닌 사내다. 연인이 지독한 화상에 장기가 녹아내려 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사내가 다니엘이다. 그리고 다니엘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이가 바로 정동하다.
지난 16일 무대에서 차분한 신사, 연인을 떠나보내며 슬퍼하는 남자, 장기를 찾아 헤매는 광기 어린 의사의 모습을 보여준 그는 어디로 갔을까. 다음날인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연습실에서 만난 정동하에게서 무대에서 보여준 배우의 얼굴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천진난만한 표정은 흡사 어린이를 연상시켰다.
무대 위의 정동하와 연습실의 정동하는 닮은 점이 참 없다. 이쯤 되면 분열 자아를 연기하는 것이 실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만하다. 자신의 전혀 다른 반대 모습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인데 표출을 안 해서 그런지 화내는 연기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나온다”고 답했다.
‘잭 더 리퍼’의 다니엘을 접하기 전까지 그에게 배우라는 말이 그리 익숙한 수식어는 아니었다. 오히려 KBS ‘불후의 명곡’의 최고점수 438점 기록자, 부활의 보컬이 더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그런 그가 배우로 거듭났다. 다니엘로 말이다.
다니엘과 보컬 정동하의 간극에 대해 그는 “가수로 노래 할 때는 음색이나 소리를 그 노래로 표현하면서, 목소리로 기승전결을 보여준다. 때로는 여리고 때로는 강하게 할 때도 있다. 지극히 노래를 완성하는 데 집중한다”며 가수로서의 보컬 특징을 설명했다.
이어 “뮤지컬은 대사의 전달 방식이 말할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 노래는 여린 부분 무기 하나, 강한 부분 무기 하나 이렇게 준비할 수 있지만, 뮤지컬은 무기가 없다”며 배우로서 힘든 점을 밝혔다. 뮤지컬에서는 가요 창법과는 다른 생소리가 필요하단다. 인공 조미료를 넣지 않은 음식과 같이 인공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소리를 우려내는 것이 그만의 뮤지컬 발성법이다.
다니엘은 복합적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역이다. 그는 “다니엘에 정동하의 삶을 녹였다”고 답했다. 그가 말하는 정동하의 삶이 투영된 다니엘은 이렇다. “다니엘이 정답이 있어서 많은 배우가 정답을 향해 연기한다면 재미가 없다. 각자의 성향이 있듯이 내가 맡은 다니엘은 내 성격이 드러난 캐릭터여야 한다”며 자신만의 캐릭터 지향점에 대해 설명했다. 또 “내가 내성적이라는 사람이면 구태여 억지로 다른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내향적인 내가 억지로 외향적인 캐릭터로 바뀌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이 전반적으로 음울하다고 하자 정동하는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기는 굉장히 쉽다”며 “극이 끝나고 다니엘이 ‘아. 잘 잤다’라고 하면 해피엔딩이 된다. 그렇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비극적인 부분을 통해 삶이나 인생의 본질을 더 절절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