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바(保八)’ 대신 개혁 선택했으나 경기둔화 가속화에 좌초 위기
중국 시리 시대를 대표하는 경제정책인 ‘리코노믹스’가 위기를 맞았다. 경기둔화가 가속화하면서 리 총리가 의욕적으로 펼쳤던 개혁이 좌초될 것이라는 불안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5년간 후진타오·원자바오가 이끈 전 지도부는 ‘바오바(保八 8%대 성장률 유지)’가 흔들릴 때마다 재정을 대규모로 투입하고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전문가들은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 Fed) 의장의 공격적인 양적완화인 ‘버냉키 풋’에 빗대 과거 중국의 부양책을 ‘베이징 풋(Beijing put)’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리 총리는 투자와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중국 경제체제의 취약성과 경기부양책 부작용인 부동산버블, 부채 급증 등 금융시스템 부실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베이징 풋’과 정반대의 이른바 ‘리코노믹스’를 추진했다.
영국 바클레이스가 이름을 붙인 ‘리코노믹스’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자제하고 부채 감축과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최근 경제지표의 잇따른 부진에 중국 정부가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보다 1월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물가는 16개월째 하락해 디플레이션 불안까지 고조됐다.
리 총리는 전날 광시성 성도인 난닝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성장률과 고용 및 다른 지표가 우리가 정한 하한선 밑으로 내려가지 않고 인플레이션 역시 상한선을 넘지 않는다면 구조조정과 개혁 추진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혁 추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과시한 것처럼 보이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리 총리가 경기부양책을 펼칠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는 해석도 나왔다.
리 총리가 지난 5월 독일 방문 당시 제시한 중국의 10년간 경제성장률 목표는 7%였다. 전문가들은 리 총리의 전날 발언을 뒤집어 보면 경기둔화가 심화하면서 성장률 7%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면 정부가 다시 부양책 카드를 꺼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증시가 10~11일 이틀간 급등한 것도 이런 시각을 반영했다는 평가다.
쉬가오 에버브라이트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둔화는 이미 매우 빠르다”라며 “중국은 대량의 실업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지도부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조만간 부양책이 나올 가능성에 주목했다.
리 총리의 개혁 자체도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민은행은 지난달 그림자금융 등 리스크를 줄이고자 유동성 공급을 대폭 축소했다. 그 결과 은행간 단기자금금리가 폭등하는 등 신용경색 사태가 벌어졌다.
쉬가오 이코노미스트는 “지도자들은 지난달 예상과 실제 경제상황이 다를 수 있음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며 “중국 경제가 경착륙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