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중 논설실장
우선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외국 자본의 투자 유치로 고도성장을 구가해 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 체제는 고도성장으로 야기된 성장통 치유라는 처방전을 내놓았다.
사회 안정을 위해 최소한 연간 8%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바오바(保八)’ 정책 기조도 과감히 포기했다. 주룽지 중국 총리가 지난 1997년 금융위기를 맞아 “연간 900만개 정도의 새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적어도 8%의 성장률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바오바는 중국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였다.
시-리 정권은 ‘성장률 8%’의 지표보다 곪을 대로 곪은 중국 경제의 수술이 선결과제라고 진단한 것이다. 과잉 설비투자와 부동산시장 과열, 그림자 금융을 치유하기 위한 것 등 세부정책도 내놨다.
그러나 돈줄을 조여서 기업 구조조정, 금융시스템 개혁을 추진한다는 리코노믹스에 대해 중국 경기가 경착륙할 경우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한 충격보다 더 큰 후폭풍이 나타날 것이라는 서방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긴축’에서 ‘성장’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경고하지만 대수술 없이는 ‘중진국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는 중국 지도부의 신념도 확고한 듯 보인다.
실제로 2분기 성장률이 7.5%를 기록해 2개 분기 연속 하락세를 보였지만 리 총리는 ‘리코노믹스’의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거듭 밝혔다. 그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이익, 한 번에 여러 가지 목적을 이룸으로써 ‘중국 경제의 업그레이드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달리 일본은 20년 가까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지출와 규제완화라는 보양책을 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하자 “경제정책이 잘못되지 않았고 이를 국민이 지지해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15년 동안 계속돼 온 디플레이션을 탈피하는 역사적 사업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정력을 집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아베노믹스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일본의 재정정책에 대한 서방의 우려도 크다.
UBS 웰스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알렉스 프리드먼은 “아베노믹스가 성장동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경기침체 속에 물가만 상승하는 스테그플레이션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책 실패로 자산가격만 급등하고 실질성장은 없는 스테그플레이션 상황을 맞게 되면 아베게돈(아베노믹스 + 아마게돈)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이 활기를 띠는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주요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면서 내수도 살아나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뚜렷하다. 그러나 일본 금융기관 노무라가 “앞으로 6개월이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를 가름할 시험기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듯이 아베노믹스의 승패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은 유보적인 평가가 많다.
우리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인 ‘경제부흥’과 ‘국민행복’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지만, 정책충돌이 불가피하다. 경제돌파구로 제시한 창조경제는 방향성을 잃었다. 과도한 복지 공약에 발목이 잡혀 있고, 과도한 경제민주화 입법으로 기업 활동에 족쇄까지 채워졌다. 리코노믹스와 아베노믹스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지만, 정책 추진력이나 일관성 면에서 부러움을 살 만하다.
정치권은 민생과 경기활력 회복을 위한 규제완화를 위한 법안 처리는 뒷전인 채 정쟁에 함몰돼 있다. 각계각층의 이해집단들은 제각각 목소리를 내면서 정책추진의 발목을 잡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과거 정부와의 단절, 세수 확보를 위한 무차별적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으로 기업들의 기업의지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국내 기업 10곳 중 9곳 정도가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설문조사 결과는 지극히 당연하다.
자연 성장률마저 일본에 역전됐다. 일본의 1분기 GDP성장률이 4.1%를 기록한 반면 우리는 2분기 성장률이 9분기 만에 1%대를 회복했지만, 연간으로는 2%대 후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성장률과 30만개 수준인 일자리로는 근혜노믹스의 실패는 자명하다. 근혜노믹스가 경제활력 회복을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